
당신이 '두뇌 서바이벌'이 재미없는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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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두뇌 서바이벌 게임의 애청자다. 더 지니어스, 피의 게임, 데블스 플랜 등 지금까지 한국에서 방영된 두뇌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절반 이상을 시청했다. 처음에는 이런 류의 프로그램이 너무 재밌고 짜릿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점점 흥미를 잃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유가 뭘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모든 프로그램이 계산과 암기 같은 단순한 산술 ‘기능’만을 평가하고, 시대가 필요로 하는 진정한 ‘지성’의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디어 안에 경연 프로그램은 단순 오락을 넘어, 사회의 욕망을 반영하고 문화적 기준을 설정한다. 사회에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능력이, 프로그램에서 문제 풀이를 위한 중요한 역량이 된다. 시청자들은 문제 출제 방식과 플레이 방식을 통해 ‘무엇이 똑똑한 것인가?’를 학습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경연에서 필요로 하는 특성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능력’으로 다시 한번 부각된다.
그러나, 지금의 문제 수준은 시대착오적이다. 우리는 사진 한 장으로 특정한 순간과 상황을 평생 기억할 수 있다. 또, 계산기를 이용하면 복잡한 사칙연산도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 AI가 인간의 지능의 많은 부분을 대체하는 시대, 암기와 계산 능력은 더 이상 중요한 능력이 아니다. 그것이 진정 개인의 지성을 평가하는 합리적인 방법인가? 그 게임에서 이긴다고 정말 그게 똑똑한 걸까?
예술 작품에는 공공성이 중요한 평가 지표로 작동한다. 최근엔 사회적 경제, 기업의 ESG 같은 키워드도 우리에게 친숙해졌다. 마찬가지로 예능 프로그램도 시청률만이 전부가 아니다. 사회에 미칠 영향력, 즉 문화 생산자의 책임도 함께 고려돼야 한다. ‘무한도전’이 단순한 인기 예능을 넘어 문화사에서도 높게 평가받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유년 시절, TV에서 본 외국 영화 한 편이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다. 제목도 줄거리도 모두 잊었지만, 그 속 한 장면에서 느낀 감정 만은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한 등장인물이 위험해 처해 있었다. 원형 가스 밸브에서 가스가 계속 새어 나오고 있었고, 그는 그 밸브에 매달린 채 손을 움직여 간신히 밸브를 잠그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끝내 힘이 빠진 그는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고 만다. 그 장면은 어린 나에게 거대한 공포로 다가왔고, 이후 오랫동안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매달리는 운동을 하지 않으면 저런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없어.” 그리고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그 장면만큼은 생생히 떠오른다. 그 영화가 내게 남긴 메시지는 아주 분명했다.
“너, 매달리지 못하면 죽어!”
이처럼 미디어는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에 큰 영향을 끼친다. ‘두뇌 서바이벌 게임’을 보면 결국 나에게 남는 메시지는 이렇다
‘너 계산 못하면 죽어!’**
비단 생존에 대한 공포뿐만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의 자격을 갖추고 있는지에 대한 두려움도 심어준다.
‘너 학벌, 직업 안 좋으면 죽지도 못해!!!’
패배보다 더 두려운 건, 시작조차 허락되지 않는 것이다. 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게임’에 낄 수도 없고, 애초에 무대 밖으로 밀려나니 말이다.
이런 기계적인 유행의 반복 속에서 돋보인 예외적인 결과물이 있다. 바로 Wavve에서 방영한 ‘사상검증구역 : 더 커뮤니티’다. 이 프로그램은 ‘이념 서바이벌’을 표방했기에 조금 결이 다르지만 주목할만하다. 여기에서는 경쟁과 탈락 중심이 아닌, 협력과 연대의 서사를 의미 있게 보여줬으며 인간의 다양한 지성을 평가 지표로 삼았다. 그중 ‘익명 토론’에서 논리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다른 참가자를 설득하는 능력을 평가 지표로 삼은 점은 인상 깊었다. 토론에서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반대되는 입장을 대변해서 논쟁하기도 했는데, 이를 통해 참가자들은 서로 다른 철학과 이념에 대해 배제하지 않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익명 토론에서 한 참가자가 반대 의견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고백은 무척 뭉클하게 다가왔다. 이런 참신한 기획은,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복합적인 갈등 속에서 미디어의 역할을, 더 나아가서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보여준다.
한편 비슷한 경쟁 구조라는 한계 속에서 돋보이던 특별한 플레이도 있다. '데블스 플랜’ 시즌 1에서 ‘궤도’의 플레이는 살펴보자. 그는 자기 능력을 이용해 ‘누구도 탈락하지 않는’ 필승법을 제시했다. 그런데, 그 선택은 ‘빌붙어 플랜’이라는 조롱과 함께 온라인에서의 수많은 악플 세례를 받았다. 끝내, 플레이어가 자신의 선택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며 자기 검열까지 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나는 이 반응과 정반대의 생각이다. 해당 플레이는 획일적인 경연 프로그램 안에서 획기적이었고, 매력적인 전략이었다. 서바이벌의 플레이 방식은 정해진 것이 없고, 경쟁과 탈락을 통해서 서사가 완성해야 한다는 통념은 정답이 아니다. 이러한 대중의 반응은 한국인의 경쟁 지상주의와 능력주의, 획일화 문화가 잘 버무려진 ‘비빔밥’ 고추장 없이 먹는 기분이었다.
'피의 게임' 시즌 3에서는 불편한 상황이 있었다. 프로그램 극 초반 플레이어를 모아 놓은 뒤, 아무 이유도 없이 투표를 통해서 참가자 한 명을 탈락시키는 미션이 있었다. 이 룰은 ‘마녀사냥’과 다를 바 없다. 마녀사냥은 중세 시대의 인류의 야만성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그런데 왜 이런 장치가 두뇌 게임에 등장했는지 의문이다. 플레이어 ‘서출구**는 모두가 자신에게 투표해서 탈락을 막아보자고 설득했다. 그러나 공생을 위한 선택은 게임 구조에 의해 철저히 무시되었다. 플레이어들의 결정은 무효가 되었고 재투표를 통해 ‘굳이’ 탈락자를 배출했다.
그의 이런 선택의 이유에는 개인의 성향 외에도 사전에 서바이벌을 통해 겪었던 불쾌한 경험이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서출구는 래퍼들의 경연 프로그램 ‘쇼미 더 머니’ 시즌 4에서 불공정한 싸이퍼 미션으로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탈락한 경험이 있다. 당시 상황을 설명하자면, 제작진은 참가자들에게 마이크 하나만 주고, 10분 안에 자유롭게 랩을 하도록 했다. 짧은 시간의 공연을 통해 탈락이 결정되는 서바이벌임에도, 순서도 없고, 규칙도 없었다. 수가 많았던 참가자들이 시간 안에 랩을 할 수 있는지 조차 불확실한 상황이었다. 무분별한 설계의 결과, 자연스럽게 래퍼들은 탈락하지 않기 위해서 ‘마이크 쟁탈전’을 하게 되었다. 이는 주최 측이 참가자를 존중하지 않는대서 나온 것이었고, 그 결과 서바이벌 프로그램 중 최악의 장면이 탄생하였다. 거의 마지막에 마이크를 잡은 서출구는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동생에게 마이크를 양보했고, 그 결과 그는 시간초과로 랩도 하지 못하고 탈락했다.
나는 이런 생존보다 공존을 택하는 미덕에 대해, 정해진 불공정한 룰에 순응하지 않는 비판적인 사고와 용기에 대해 당연히 특별한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진정한 인간의 ‘지성’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암기나 계산 능력 외에 우리는 무엇을 평가해야 할까? 앞서 언급한 내용을 단서 삼아, 이제는 이 질문에 대해 좀 더 본격적으로 모색해 보자. 물론 기존의 틀을 대체할 수 있는 평가 지표를 당장 만들어내는 일은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다. 새로운 프레임을 설계하려면 기존의 관습을 넘어서는 시각과 뚜렷한 철학적 기반이 요구된다. 하나의 아이디어를 제시하자면, 현재 우리 사회에 벌어지는 다양한 문제에서 실마리를 찾는 것이다. 단순히 지능을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복잡한 문제를 인식하고 분석**하며, 그에 대한 대안을 고민하고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을 중심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1. 지구온난화
2. 전쟁과 난민
3. 양극화, 불평등
4. 고립과 은둔
5. 니트
6. 개인의 정서적 문제
7. 자살
8. 출산율
9. 집단주의, 획일화
10. 나이 주의
11. …
위에서 언급한 내용들은 국제 사회와, 한국에서 중요하게 지적되고 있는 문제들이다. 해결해야 할 문제는 이외에도 무수히 많다. 물론 한정된 시간 안에 이처럼 복잡하고 거대한 문제를 온전히 해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일정한 한계를 설정하고, 유사한 맥락으로 축소한 시뮬레이션 혹은 게임 형식으로 문제를 재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 다른 아이디어는 지금껏 프로그램에서 충분히 주목하지 않았던 인간의 다양한 ‘고차원적 지성’에서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① 인지적 사고력
> 세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문제를 재구성하며, 제도를 상상할 수 있는 능력
- 비판적 사고
- 인지적 유연성
- 새로운 관점 제시
- 제도적 상상력
- 철학적 통찰력
② 감성·윤리 감각
> 타인의 고통에 반응하고, 공동체적 감수성을 실천하는 능력
- 공감 능력
- 돌봄 능력
- 이타성
- 비정상성에 대한 포용력
③ 상상과 창조력
> 새로운 가능성을 떠올리고, 의미 있는 이야기로 세상과 연결하는 능력
- 상상력
- 스토리텔링 능력
이처럼 틀을 넘는 사고와 다양한 시도를 통해서 진정한 ‘두뇌 서바이벌 게임’의 의미가 발견되고 재정의 될 것이다. 애초에 인간이 가장 필요로 하고, 존경할만한 진정한 의미의 ‘지성’은 우리 사회에서 해결할 수 없어 보이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이렇게 게임이 재편된다면, 그에 대한 파급효과는 엄청날 것이다.
지금의 게임은 뇌의 일부만을 쓰는 편향된 두뇌 싸움이며, 단순히 계산 잘하고 정치 잘하는 사람이 계속해서 승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게임이다.
그에 대한 적절한 예시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갓동민’으로 신격화되는 ‘장동민’의 사례이다. 그는 분명 뛰어난 능력을 지녔다. 하지만, 그가 신격화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능력 이전에, 시험 문제 출제자가 매번 똑같은 결의 문제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의아한 건 현실에서는 아무도 거기에 문제라고 느끼지 못하고,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올림픽에서 특정 국가가 한 종목의 메달을 지속적으로 독점하면, 형평성과 다양성을 고려해 해당 종목의 메달 수가 조정되기도 한다. 지금 이 서바이벌을 보면, 올림픽 순위를 한두 종목만으로 최종 승패를 결정짓는 것과 같다. 심지어 인간의 ‘지성’은 어쩌면 '종목'보다도 훨씬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졌는데 말이다.
현 인류가 지구의 최후 생존자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개별 능력보다는 집단적 협력 덕분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만약 서바이벌 게임이 단순한 오락이 아닌, 현실 속에서 실제로 펼쳐진다고 가정해 보자. 계산이 빠르고 경쟁에 능한 단 한 명의 승자를 뽑는 일보다, 서로 협력하여 마주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이라는 점은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명확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가 즐기는 ‘생존(Survival)’게임의 진정한 목적지는 결국 ‘공존(coexistence)’게임이다.
앞으로 이런 프로그램에 고학벌, 높은 IQ, 번듯한 직업이 없더라도 다양한 플레이어가 나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이 단지 다양성이라는 이름 아래 선택된 도구가 아니라, 각자의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게임판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
직업을 갖지 않는 사람, 대학을 거부한 사람, 철학가, 예술가, NGO 해외 활동가, 장애인, 돌봄 노동자, 미니멀리스트, 배달노동자, 다문화인, 노숙자, 여행가 등등 다양한 사람들이 플레이어로 등장시켜 보자. 우리는 모두 자기 삶에서 축적해 온 자신만의 능력과 지성이 있다. 새롭게 만들어진 게임의 패러다임에서는 현재 게임 밖에 있는 일반적인 사람들도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게임 이길 바란다.
당신도 한 번쯤 은 마음 한편으로 이 대단한 게임에서 활약하는 자신을 상상해 봤을 것이다. 그러나 참가자들의 화려한 스펙과 경력에 그 ‘꿈’을 단지 허황된 망상으로 치부했을 것이다. 그런 헛된 상상은, 많은 이들이 말할 때 상상으로만 머물지 않는다.
소수의 승리나 약자의 반란처럼 예상치 못한 전개가 강한 서사를 만들어내면, 그것을 우리는 ‘재밌다’라고 느낀다. 평범한 우리 안에 있는 비범함을 찾아내는 것은 모두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의미 있는 일이고, 이를 통해 사회에서 무엇이 중요한 가치인지 재고해 볼 수 있으며, 더욱이 엄청난 재미 요소가 될 수 있다.
두뇌 서바이벌 게임은 뇌, 즉 인간의 지성을 이용해서 문제를 풀어 살아남는 게임이다. 그렇다면 어떤 문제를 푸는 게 중요할까? 우리는 전 지구적 문제와 사회의 문제, 개인의 문제 등 수많은 문제로 둘러싸인 삶이라는 게임에서 살고 있다. 현실에서 겪고 있는 수많은 문제는 여전하지만, 게임에서는 현실과 전혀 상관없는 1차원적인 문제만을 풀고 있다. 그 게임은 심지어 학벌, 직업, 경력을 갖춘 엄친아, 엄친딸들만 참가할 수 있다.
두뇌 서바이벌도 산수나 암기 시험이 아닌, 사회적 담론을 만들고 현실의 진짜 문제를 푸는 소셜 게임이자 공존 게임이 될 수 있다.
지금처럼 천룡인들만의 잔치가 아니라, 다양한 주인공들이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뽐낼 수 있는 축제가 될 수 있다.
그 판을 만드는 것, 바로 그것이 기획자가, 방송국이, 그리고 시청자가 가져야 할 진짜 ‘능력’이다.
위대해지길 두려워하지 말라.
진짜 ‘재미있는’ 게임을 ‘플레이’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