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왜 지금 국민을 위한 개헌인가"
서론
오세훈 서울시장의 저서 『왜 지금 국민을 위한 개헌인갱(2016)는 대한민국 헌법 개정의 필요성과 방향을 논하는 책으로, 표면적으로는 “국민을 위한” 개헌을 주장한다. 이 글은 해당 저서를 정치학적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분석하며, 특히 포퓰리즘, 신자유주의, 권위주의, 정당정치, 사회 양극화 등의 이론적 프레임워크를 적용한다. 또한 마키아벨리, 조지프 슘페터, 한나 아렌트, 로버트 달, 후안 린츠 등 저명한 정치사상가들의 관점을 원용하여 오세훈의 주장을 평가하고, 그의 정치 전략이 지닌 극우적 경향성과 민주주의적 함의(含意)를 검토한다. 이를 통해 권력 추구를 “국민”의 이름으로 포장한 개헌 담론의 모순과 위험성을 학술적으로 비판하고자 한다.
정치학적 프레임워크 적용
포퓰리즘의 관점
오세훈의 개헌 주장은 제목에서부터 *“국민을 위한”*이라는 수사를 내세우며 대중에 직접 호소한다. 이는 정치학에서 말하는 포퓰리즘의 전형적 특징과 맞닿아 있다. 포퓰리즘은 사회를 “순수한 국민” 대 “부패한 엘리트”의 이분법으로 간주하고, 정치가 국민 일반의 일반의지(General Will)를 직접 구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념이다 . 오세훈은 현행 헌법 체제가 *“국민”*의 뜻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개헌을 통해 *“진정한 국민의 뜻”*을 실현할 수 있다고 암시한다. 이러한 주장은 엘리트에 대한 반감과 국민에 대한 이상화를 특징으로 하는 포퓰리즘적 담론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포퓰리즘적 접근에는 위험이 따른다. 포퓰리즘 지도자는 스스로를 *“국민의 유일한 대표”*로 내세우며 다원적 견해들을 배척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민주주의의 핵심인 다원주의와 견제와 균형을 약화시킬 수 있다. 실제로 로버트 달은 *“사람들은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호소에 속을 수도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 오세훈의 주장이 진정 국민주권을 강화하려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특정 정치세력의 권력 강화를 “국민” 명분으로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위험을 간과할 수 없다. 그의 개헌론이 포퓰리즘적 열정을 불러일으킨다면, 향후 다수의 폭정이나 소수 의견의 배제로 이어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신자유주의의 관점
오세훈은 보수 정치인으로서 종종 신자유주의적 가치관을 표방해왔다. 실제로 그는 서울시장 재임 시절 무상급식과 같은 보편복지 정책을 *“망국적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며 거부한 바 있다 . 이러한 행보는 시장 논리와 작은 정부를 중시하는 신자유주의 이념에 부합한다. 그의 저서에서도 *“국민의 기본권 확대”*를 논하며 경제적 자유와 경쟁을 언급했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이는 국가의 역할을 축소하고 개인의 자유와 시장 경쟁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적 개헌 방향을 시사한다. 예를 들어 책의 한 대목에서 *“분권과 경쟁”*을 통해 중앙집권적 구조를 해체하고 자율적 경쟁 질서를 확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 이는 국가 권력을 분산시켜 시장원리에 맡기겠다는 신자유주의적 개헌 논리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에는 비판이 따른다. 신자유주의적 개헌은 자칫하면 사회적 약자 보호와 복지에 대한 헌법적 책무를 약화시켜 경제적 불평등과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 오세훈은 개헌을 통해 *“국민의 기본권”*을 강화하자고 하지만, 정작 경제적 약자를 위한 사회권 보장은 등한시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그의 과거 정책과도 모순된다. 그는 “국민을 위한” 개헌을 주장하면서도, 정작 시장 논리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한 무상급식은 국민투표까지 불사하며 저지하려 했다. 이러한 행보는 국민 다수의 복지 향상보다는 재정 건전성이나 효율성을 앞세운 것으로, 국민의 이름으로 국민의 이익을 제한한 셈이다. 따라서 그의 개헌 구상이 진정 누구를 위한 것인지, 신자유주의 이념에 치우쳐 국민생활의 현실을 외면하는 것은 아닌지 비판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권위주의적 경향 분석
오세훈의 개헌론에서는 미묘하게 권위주의적 경향도 엿볼 수 있다. 그는 책에서 현행 헌정체제를 *“87년 체제”*로 규정하며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하면서, 강한 리더십을 통한 개헌 드라이브를 강조한다. 이러한 태도는 개헌 과정을 국민적 합의보다는 지도자의 결단에 중점을 두는 인상을 준다. 정치학적으로 볼 때, 성급한 개헌 추진과 절차적 정당성 부족은 권위주의적 통치자들이 흔히 보이는 모습이다. 후안 린츠에 따르면 민주주의 붕괴는 대중의 지지 상실이 아니라 오히려 엘리트의 음모나 비민주적 행위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 만약 지도자가 국민적 숙의 없이 자신의 구상대로 헌법을 바꾸려 한다면, 그것이 바로 엘리트 주도의 민주주의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오세훈은 개헌이 “국민을 위한” 것이라 강조하지만, 실제 개헌 추진 동력이 자신과 특정 정치세력의 이해관계에서 나오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책이 출간된 2016년 당시 그는 미래 대권주자로 거론되던 인물이었다 . 개헌 논의는 차기 권력구도를 염두에 둔 전략일 가능성이 있으며, 권력 유지 또는 재창출을 위해 헌법을 도구화하는 것은 권위주의 지도자들이 즐겨 쓰는 통치술이다.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관점에서 보면, 유능한 권력자는 필요하면 제도마저 바꾸어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려 들 수 있다. 마키아벨리는 *“사람들은 변덕스럽기에 쉽게 설득되지만 오래 믿지는 않으므로, 지도자는 설득이 통하지 않을 때 힘을 쓸 준비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이는 곧 지도자가 대중의 지지가 식을 경우 강제력이나 권위의 집중으로 목표를 밀어붙일 위험을 뜻한다. 오세훈의 개헌 드라이브 역시 국민 여론에 호소하다가 안 되면 정치적 압박이나 편법적 절차로 강행될 소지가 있으며, 이런 모습은 민주 절차의 훼손과 권위주의적 통치로 비칠 수 있다.
정당정치와 양극화의 맥락
이 책은 또한 한국 정당정치와 이념 양극화의 맥락에서 읽어볼 필요가 있다. 오세훈이 개헌을 역설한 2016년은 정치권의 극한 대립과 양당 체제의 비효율이 지적되던 시기였다. 그는 *“양극화 해소를 위한 개헌”*을 책의 주요 의제로 삼았는데 , 이는 표면적으로는 정파 간 갈등을 줄이고 국민 통합을 도모하겠다는 취지로 보인다. 예를 들어, 대통령 5년 단임제하에서 생기는 승자독식과 정권 말 권력누수 현상을 막기 위해 권력구조 개편(예컨대 이원집정부제나 내각책임제 전환 등)을 거론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제도 개혁은 일견 정당 간 제로섬 정치를 완화하고 협력을 증진시킬 수 있다는 기대를 준다. 실제로 많은 정치학자들이 한국 대통령제가 갖는 양극화 유발 요소를 지적해왔고, 개헌 논의도 주기적으로 등장해왔다.
그러나 오세훈 개헌론의 이면에는 정당 이해관계가 깔려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그는 야당이었던 보수 진영의 일원으로서, 2017년 대선에서 진보 진영 후보의 당선을 유력시하는 국면에 이 책을 냈다. 보수 진영에게 유리한 권력구조(예컨대 국회 권한 강화나 연정 가능성 증대)를 마련하려는 계산이 있었다면, 이는 국가 백년지대계인 헌법을 정략적 도구로 삼은 셈이다. 정당정치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런 행보는 자신의 진영에 유리한 룰을 만들고자 하는 게임의 조작으로 비칠 수 있으며 오히려 정치 불신과 분열을 키울 위험이 있다. 더욱이, 개헌 국면 자체가 새로운 정치적 쟁점의 양극화를 초래할 수 있다. 국민 다수가 합의하지 못하는 개헌안을 강행하면 진영 간 갈등은 악화되고, 헌법 자체가 정치 투쟁의 연장선에 놓여 사회 통합을 해치는 역효과가 날 수 있다. 따라서 오세훈의 양극화 해소 주장은 선의에도 불구하고 현실 정치에서 또 다른 양극화의 뇌관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비판적 검토가 필요하다.
정치학 학자들의 관점 반영
마키아벨리의 시각: 권력과 통치술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군주에게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과 이미지 관리에 주력할 것을 조언한 현실주의 전략가다. 그의 관점에서 오세훈의 개헌 주장은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권력구조 개편을 시도하는 한 정치인의 계산으로 비칠 수 있다. 마키아벨리는 지도자가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 미덕을 가장하되, 필요할 경우 비도덕적 수단도 불사해야 한다고 보았다. 오세훈이 헌법 개정이라는 중대한 수단을 동원해 자신의 정치적 목표를 이루려 한다면, 이는 마키아벨리식 권력행사의 한 단면일 것이다. 실제로 마키아벨리는 *“모든 사람이 군주가 겉으로 드러내는 모습을 볼 수 있으나, 그 실상을 알지는 못한다”*고 하여 지도자의 이미지 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오세훈은 개헌 논의를 통해 개혁가이자 비전 제시자로 자신의 이미지를 구축하려 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또한 대중의 지지는 변덕스럽고 일시적이라 경고하면서, 지도자가 언젠가 설득이 통하지 않을 때는 강제력으로라도 관철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이 냉혹한 조언에 비추어 볼 때, 오세훈 개헌론의 위험은 그가 대중적 명분 아래 권력을 집중하거나 향후 국민의 뜻과 무관하게 자신의 구상을 밀어붙일 유혹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마키아벨리의 눈으로 보면, *“국민을 위한 개헌”*이라는 아름다운 구호 뒤에 권력자 자신의 계산이 숨어 있고,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민주적 절차도 희생될 수 있다는 음영이 드러난다. 이는 우리가 이 개헌론을 경계심을 갖고 바라봐야 하는 이유다.
슘페터의 시각: 민주주의 이론과 리더십
조지프 슘페터는 민주주의를 국민의 *“의지 구현”*이라기보다 엘리트 경쟁을 통한 지도자 선출의 제도로 보았다. 슘페터는 고전적 민주주의 이론이 가정하는 *“공공선에 대한 국민의 합리적 의지”*를 회의적으로 바라보며, 실제로는 유권자들이 정치 쟁점을 충분히 이해하거나 일관된 일반의지를 갖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 그의 관점에서 오세훈의 “국민을 위한 개헌” 주장은 일종의 낭만적 수사로 비칠 수 있다. 슘페터라면 “국민이 원해서” 개헌을 한다는 논리에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실제로 그는 *“대부분의 쟁점은 국민이 아니라 지도자들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았는데 , 오세훈의 책 제목처럼 정치인이 나서서 국민의 이름을 들먹일 때 오히려 국민이 그 결정에서 배제될 수 있다고 경고했을 것이다.
또한 슘페터는 민주주의를 경쟁적 지도자 선출 과정으로 파악했기 때문에, 지도자가 대중의 비합리성이나 인기영합적 충동에 영합할 가능성을 경계했다. 오세훈이 개헌 필요성을 역설하며 국민 정서를 자극했다면, 슘페터는 그것을 정치적 기업가가 시장(유권자)을 상대로 지지를 *“판매”*하는 행위로 보았을 것이다. 그는 정치 지도자가 표를 얻기 위해 국민의 막연한 불만이나 희망을 이용할 수 있다고 보았는데, 개헌과 같은 복잡한 주제를 단순한 구호로 포장하는 것이 그 사례가 될 수 있다. 결국 슘페터적 시각에서, *“국민을 위한 개헌”*은 실은 지도자를 위한 전략일 가능성이 높다. 국민은 투표를 통해 개헌 찬반에 의견을 표할 수 있겠지만, 그 실질 내용과 방향은 엘리트인 정치인이 장악하며, 국민은 최종 선택만 할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오세훈의 주장은 민주주의의 절차적 형식은 갖추었을지언정, 실제 숙의 민주주의나 참여 민주주의의 관점에서는 부족한, 일방향적 리더십 행사로 평가될 수 있다.
한나 아렌트의 시각: 전체주의 요소와 권력 집중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등장을 분석하며 대중 선동과 진실 왜곡의 위험성을 역설한 바 있다. 아렌트의 견지에서 오세훈의 개헌 담론을 보면, 거기에는 선의의 주장 속에 잠재된 전체주의적 요소가 감지된다.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사실에 대한 경멸과 허구의 체계적인 활용이 전체주의 운동의 특징이라고 했다 . 물론 오세훈의 주장을 전체주의에 직접 비유할 수는 없지만, *“국민을 위한”*이라는 슬로건이 혹시 사실과 다른 정치적 허구를 덮는 수단은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그는 개헌만 되면 마치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국민의 뜻이 구현될 것처럼 말하지만, 이는 복잡한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주장일 수 있다. 아렌트식으로 말하면, 대중은 때때로 “가장 터무니없는 주장도 믿고 싶어하며, 동시에 어떤 것도 믿지 않으려는” 모순적 심리에 빠질 수 있는데 , 선동가들은 이 점을 이용해 사실을 왜곡한 선전을 퍼뜨릴 수 있다. 오세훈이 개헌을 만병통치약처럼 선전한다면, 이는 대중의 합리적 판단을 흐리는 선동이 될 수 있다.
또한 아렌트는 권력의 집중과 공론장의 파괴를 전체주의 경향의 핵심으로 보았다. 오세훈의 개헌론이 권력 구조 개편을 이야기하지만, 권력 분산의 미명 하에 새로운 형태의 권력 집중을 초래할 위험은 없는가? 예를 들어 대통령 권한을 줄이고 국회나 지방정부 권한을 늘리자고 해도, 결국 지배 엘리트의 권력 총량은 줄지 않고 형태만 달라질 수 있다. 게다가 개헌 과정에서 정부와 정치인이 주도권을 쥐고 국민은 수동적 추인자가 된다면, 이는 진정한 공론장의 실종을 의미한다. 아렌트는 자유로운 토론과 의견 교환이 사라지고 일방적 진리가 강요되는 사회를 우려했는데, 개헌 국면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배제되고 *“국민이 원한다”*는 단일한 구호만 남는다면 민주주의 건강성이 해쳐진다. 결국 아렌트의 시각에서, 오세훈의 주장은 아무리 국민을 내세워도 권력을 쥔 자들이 사실상 현실을 재단하는 위험이 있다. 대중은 선동에 환호하면서도 한편으론 냉소에 빠져들 수 있고, 나중에는 설령 속았다는 것을 알아도 지도자의 능란함을 칭송하며 따르는 전체주의적 복종 양상을 보일 수 있다 . 이러한 시나리오를 경계하는 것이 아렌트적 비판의 요지라 할 것이다.
로버트 달의 시각: 다원주의적 민주주의
로버트 달은 민주주의를 다원적 권력 구조와 시민 참여의 관점에서 이해한 학자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진정한 민주 개혁은 다양한 집단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권력이 분산된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달은 민주주의의 발전 형태로 **다원주의적 폴리아키(polyarchy)**를 제시하면서, 어느 일방의 지배도 아닌 포용적 정치를 중시했다. 오세훈의 개헌론을 달의 눈으로 보면, 몇 가지 우려가浮上(부상)한다. 첫째, 개헌 추진 과정의 포용성 문제이다. 달은 민주주의에서 *“정책 결정에 대한 통제가 선출된 공직자들에게 헌법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고 했지만 , 동시에 시민들의 효과적 참여와 공론 과정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오세훈은 책에서 국민투표 등 절차를 언급했을 수 있지만, 정작 실제로는 정치 엘리트 주도로 개헌 담론이 형성되었다면 이는 달이 말한 시민 참여의 이상에 못 미친다. 헌법같이 중요한 사안을 논할 때 시민사회, 야당, 소수자 집단의 의견 수렴과 타협이 필수인데, 오세훈이 제시한 방향이 자신이 속한 보수 진영의 목소리에 경도되어 있다면 다원주의 정신에 어긋난다.
둘째, 개헌의 내용적 측면에서도 달의 기준으로 평가할 부분이 있다. 만약 오세훈의 개헌안이 권력구조 개편을 통해 실질적으로 견제와 균형을 강화하고 더 많은 세력이 정치에 참여할 길을 열어주는 것이라면 달의 다원주의와 부합할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개헌이 특정 기관이나 세력에 권력을 집중시키는 효과를 낳는다면 이는 반(反)다원주의적이다. 달은 민주 체제에서 견제받지 않는 권력을 경계했고, 헌정 질서가 다양한 중심을 가져야 안정된다고 보았다. 오세훈의 구상이 대통령 권한을 줄이는 대신 국회의 다수당 권한을 비대하게 만들거나, 혹은 중앙권력을 지방으로 분산시킨다면서 실은 지방정치 엘리트의 영향력만 키우는 결과가 된다면, 권력 형태만 바뀌었을 뿐 시민 개개인의 정치적 영향력은 그대로일 수 있다. 더 심각하게는, 달이 우려한 대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만든 규칙들이 도리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역설도 벌어질 수 있다 . 예컨대 개헌 후 제도 하에서 다수파가 헌법을 방패 삼아 소수를 배제하거나 경쟁을 봉쇄하면 민주주의 안정은 오히려 흔들린다. 달의 관점에서, 오세훈의 국민 개헌 주장은 폴리아키적 합의의 산물이 아니라 편향된 정치적 기획일 가능성이 높으며, 절차와 내용 양면에서 민주적 정당성을 엄격히 따져봐야 한다.
후안 린츠의 시각: 권위주의 경향 및 민주주의 훼손 여부
후안 린츠는 현대 민주정 붕괴 사례를 연구하며 권위주의로의 이행 경로를 분석한 정치학자다. 린츠의 연구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종종 점진적 약화와 엘리트의 이탈로 무너진다. 그는 특히 대통령제의 경직성과 정당 간 극한대립이 민주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고, 또 반(反)체제 정당이나 준(準)충성적(opposition semi-loyal) 세력이 체제 내부에서 민주 규범을 잠식하는 위험을 언급했다. 오세훈의 개헌 담론을 린츠의 시각에서 보면, 긍정적 요소와 부정적 요소를 모두 검토하게 된다. 한편으로, 린츠는 한국처럼 대통령 권력이 강한 체제의 문제점을 지적했으므로, 만약 오세훈이 제안하는 개헌이 제왕적 대통령제를 견제하고 의회 중심의 내각제로 전환하는 것이라면 이는 린츠의 권고에 부합할 수도 있다. 실제로 린츠는 *“이원집정부제나 내각제는 대통령제보다 민주주의 안정에 유리할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따라서 오세훈의 개헌이 대통령 권력을 분산시키는 내용이라면, 표면적으로는 린츠가 말한 권위주의 예방책으로 볼 여지도 있다.
그러나 린츠가 더 강조한 부분은 민주주의에 대한 엘리트들의 태도였다.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권위주의적 경향은 쿠데타처럼 외부에서 오는 게 아니라, 헌정 내부의 기회주의적 행위에서 온다는 것이다 . 오세훈의 개헌 책략이 바로 그런 기회주의로 읽힐 수 있다. 즉, 자신이나 소속 세력이 유리한 틀을 만들기 위해, 민주주의의 근간인 헌법을 흔들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다. 린츠는 민주 헌정질서를 존중하지 않고 룰을 바꾸려 드는 행태 자체가 권위주의적 징후일 수 있다고 보았다. 특히 선출직 지도자가 긴급상황도 아닌데 체제 변혁을 추구한다면, 그것이 아무리 합법적 절차를 따른다 해도 민주주의 안정에 위험신호가 된다. 왜냐하면 그러한 시도는 패배하면 체제를 바꾸려 드는 승자 불복 문화를 조장하거나, 헌법에 대한 존중심을 낮춰 결과적으로 헌정질서의 일상적 유린을 용인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린츠는 양극화된 사회에서 개헌 논의 자체가 위험할 수 있다고 보았다. 상대 진영이 강하게 반대하는 개헌을 밀어붙이면, 패배한 쪽은 체제에 대한 충성심을 잃고 민주주의 게임을 이탈할 유인이 생긴다. 결국 린츠의 관점에서, 오세훈의 개헌 드라이브는 자칫 민주주의 게임의 룰을 흔드는 행위로 민주 안정성을 해칠 수 있으며, 그 동기가 순수하지 않을 경우 권위주의로 가는 한 걸음이 될 수 있다. 이 점에서 오세훈의 주장은 린츠가 우려하는 *“민주주의를 내부에서 조금씩 좀먹는 현상”*과 겹쳐 보인다.
비판적 논의
극우적 경향성과 정치 전략
오세훈은 스스로 보수주의자임을 자임해왔으며, 그의 정치 행보에는 한국 극우 정치의 일부 경향이 반영되어 있다는 지적이 있다. 그의 개헌 주장은 표면적으로 국민 통합을 부르짖지만, 그 내용과 맥락을 보면 우파 이념에 치우친 전략일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그는 과거 복지 정책을 포퓰리즘으로 매도하며 반(反)복지 입장을 보였고, 이는 우파 경제관에 기반한 것이다. 또한 책에서 거론된 헌법 개정 방향—기본권 강화, 국가 경쟁력, 분권—등은 겉으론 중립적으로 들리나, 실제로 해석되고 구현되는 방식에 따라 보수 진영의 이해에 봉사할 수 있다. 실제로 2016년 개헌 논의 당시 보수 진영은 진보 진영의 정권 재창출 가능성에 대비해 권력구조 분산을 선호했고, 오세훈의 목소리는 이 전략과 궤를 같이했다. 이는 그의 주장이 시대적 헌법 가치 추구라기보다 정치공학적 계산임을 시사한다.
극우적 경향성은 또한 그의 담론에서 반공 안보 논리나 강한 국가에 대한 언급으로 드러날 수 있다. 만약 책에서 현행 헌법의 평화통일 조항이나 복지 국가 조항 등을 비판하고 국가 안보나 시장자유를 더 강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면, 이는 전형적인 극우 담론의 색채다. 그러한 개헌 방향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정착된 헌법 가치를 후퇴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국민을 위한 개헌이라면서, 실제로는 국민 다수가 동의하지 않을 극우 이념—예컨대 친기업·반노동, 강력한 사법질서, 전통적 권위 강조—을 반영하려 한다면 국민에 대한 일종의 기만이다. 이는 마키아벨리가 말한 대로 권력자는 대중을 속여서라도 목적을 이룰 정당성을 찾는다는 통찰과도 통한다. 결과적으로 오세훈의 개헌론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것처럼 포장되지만, 내포된 극우적 가치는 자유보다 질서, 평등보다 권위를 중시하여 헌법 정신을 편향되게 재해석하려는 시도로 비판받을 수 있다. 이러한 정치 전략은 단기적으로는 보수층 결집을 불러올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한국 사회의 이념적 균형과 헌법적 정당성을 해치는 위험한 도박이다.
민주주의 훼손과 포퓰리즘 비판
오세훈의 책은 표면적으로는 민주주의를 한 단계 발전시키자는 제안처럼 들리지만, 그 실행 방식과 맥락을 따져보면 민주주의 훼손의 소지가 적지 않다. 우선, 그의 포퓰리즘적 의사소통 방식은 *“국민의 뜻”*을 내세워 복잡한 쟁점을 단순화함으로써 숙의민주주의의 과정을 건너뛰는 경향이 있다. 헌법 개정은 사회적 합의와 신중한 토론을 요하는 사안인데, 이를 마치 인기투표하듯 몰아붙이는 것은 민주주의의 심화가 아니라 피상화다. 달이 지적한 대로, 사람들은 민주주의라는 미명 아래 오히려 민주주의를 잠식하는 주장에 속을 수 있다 . 오세훈의 개헌 포퓰리즘이 그런 사례다. 그는 국민에게 달콤한 약속—개헌만 하면 정치가 좋아지고 내 삶이 나아질 것—을 하지만, 정작 헌정 변화의 복잡한 효과와 잠재적 부작용은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다. 이는 유권자의 판단을 흐리게 하여 민주적 의사결정의 질을 떨어뜨릴 우려가 있다.
또한 개헌 추진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절차적 문제들도 민주주의를 훼손할 수 있다. 개헌은 국회의 2/3 동의와 국민투표 등 엄격한 요건을 충족해야 하지만, 정치적 셈법이 개입하면 편법과 거래의 가능성이 있다. 예컨대, 특정 양당이 담합하여 국민적 토론 없이 밀실 합의로 개헌안을 만들고 일괄 국민투표에 부치는 식이라면 이는 형식은 민주적, 내용은 비민주적인 졸속 개헌이 된다. 국민 개개인은 찬반의 일회적 선택만 할 뿐, 과정에 참여하지 못한 채 민주주의의 주체가 아닌 객체로 전락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아렌트가 경고한 전체주의적 조짐, 즉 국민이 정치 무력감에 빠지고 소수 엘리트가 결정을 전횡하는 분위기와 상통한다 . 국민이 헌법을 자기 손으로 만들었다는 주인 의식을 느끼지 못한 채 변화가 이루어지면, 헌법의 권위와 존중도 낮아지고 향후 준법 의식이나 헌정 안정성도 떨어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오세훈 본인이 민주적 책임을 다하지 않았던 전력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는 2011년 서울시장 재임 시절 자신의 정책 뜻이 관철되지 않자 임기를 다 채우지 않고 사퇴해버린 전례가 있다. 이는 유권자와 한 약속(임기 수행)을 저버린 것이자, 선출직으로서 책임 정치를 포기한 행위였다. 민주 지도자는 선출에 승복하고 패배에도 승복해야 함에도, 오세훈은 주민투표 패배 후 책임지고 물러난다며 중도하차했다. 이 이력은 그의 정치스타일이 다소 극단적이고 승부사적임을 보여주며, 개헌 이슈에서도 뜻대로 안 되면 어떤 방식으로든 돌파를 시도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민주주의는 때로 타협과 인내를 요구하지만, 오세훈의 접근은 모 아니면 도 식으로 비춰질 수 있다. 이는 민주주의의 점진적 발전보다는 한 방의 승부를 중시하는 포퓰리즘적 정치와 결합될 때 위험한 폭주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그의 개헌 주장을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충정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민주주의 절차와 문화를 해칠 가능성이 있는 포퓰리즘적 자기 정치로 엄격히 견제해야 할 것이다.
권력 집중과 선동 정치의 위험성
*“국민을 위한 개헌”*이라는 구호 이면에는 권력 집중과 선동 정치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앞서 살핀 바와 같이, 오세훈의 제안이 실제로 권력을 어떻게 재편할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이 책을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키웠다는 점이다. 즉, 개헌 논의를 주도함으로써 의제 설정 권력을 쥐고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킨 것이다. 이는 일종의 권력 집중의 역설인데, 그는 개헌으로 권력을 분산하자고 말하면서 정작 정치 담론의 중심에 본인을 위치시켰다. 특히 당시 개헌 이슈는 여야를 막론하고 관심사였지만 선뜻 나서기 쉽지 않은 주제였다. 오세훈은 책 출간과 함께 언론에 개헌 필요성을 설파하며 선동(political agitation) 역할을 했다. 문제는 이러한 선동이 반드시 건강한 공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치인이 책을 내고 캠페인을 벌이면, 지지자들은 열광하고 반대자는 결사 반대하면서 국론이 양극화될 수 있다. 개헌같이 중대한 사안을 차분히 숙의하기보다는, 찬성은 애국, 반대는 기득권 수호 식의 흑백논리가 판칠 위험이 있다. 이는 선동 정치의 전형적인 폐해로서, 국민을 이성적 토론의 장이 아니라 감정적 충돌의 장으로 내몬다.
또한 오세훈의 개헌 구상이 실현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권력 집중이 발생할 수 있다. 예컨대, 개헌 이후 권력이 국회 다수당에 집중된다면, 만약 그의 소속 세력이 다수당을 차지할 경우 오히려 지금보다 권력이 더 편중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대통령 1인의 권력은 줄더라도, 다수당 대표나 총리에게 막강한 힘이 쏠리면 그것도 권력 집중의 한 형태다. 오세훈이 진정 분권을 의도했더라도, 정치 현실에서는 유리한 쪽으로 권력이 이동할 뿐 민중에게 권력이 가까워지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결과적으로 권력 구조 개편이 일반 국민의 정치 효능감을 높이지 못한다면, 그의 개헌은 실패한 약속이자 권력놀음에 불과하게 된다. 더구나 선동 정치로 국민을 동원한 상황에서 그런 결과가 나오면, 대중의 환멸은 커져 민주적 회의주의가 퍼질 수 있다. 아렌트는 전체주의가 득세하려면 대중의 현실감각을 마비시키고 냉소를 양산해야 한다고 보았는데 , 선동 후 실망이라는 반복은 사람들을 무관심하거나 극단으로 치닫게 할 수 있다. 오세훈의 개헌 드라이브가 그런 위험한 사이클을 촉발할 가능성을 우려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그의 주장은 권력을 분산시키겠다면서도 다른 형태의 권력 집중을 가져올 수 있고, 국민을 계몽하겠다면서도 실제로는 선동의 대상으로 소비할 위험이 있다. 이러한 이중 위험성을 간과한다면, 개헌 이후 한국 정치가 맞게 될 상황은 더욱 불안정해질 수 있다.
책 내용의 모순과 논리적 허점
오세훈의 『왜 지금 국민을 위한 개헌인갱에는 여러 모순점과 논리적 허점이 지적된다. 우선, 그는 개헌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현행 헌법 체제가 국민의 요구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비판하지만, 정작 그가 제안하는 해법이 그 원인을 제대로 짚었는지 의문이다. 예를 들어, 사회 양극화 문제를 헌법 구조 탓으로 돌리며 개헌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했지만 , 경제적 양극화나 지역·이념 갈등 등은 입헌 구조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적 선택과 사회 구조적 요인에 큰 영향을 받는다. 헌법을 손보는 것만으로 양극화가 완화될 것이라는 주장은 과대평가이며, 자칫 헌법에 과도한 역할을 기대하게 만들어 후속 정책노력을 소홀히 하게 할 수 있다. 이는 그의 논지가 단순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그는 책에서 *“국민의 기본권 확대”*를 강조했는데, 기본권을 헌법에 많이 적는다고 자동으로 국민 권리가 신장되는 것은 아니다. 기본권 보장은 입법과 사법을 통한 구체화가 뒤따라야 현실화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헌을 통해 조문만 손보면 마치 국민 권리가 증진될 것처럼 말한다면, 이는 법 현실에 대한 몰이해이거나 독자가 듣기 좋은 소리를 한 것에 불과하다. 예컨대 헌법에 환경권 조항을 넣었다고 해서 당장 깨끗한 환경이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 것과 같다. 결국 그의 기본권 확대 개헌 주장은 선언적 의미 외에 실질적 로드맵이 부족한 공허한 외침일 수 있다. 이 점에서 책은 정책적 구체성이나 실증적 근거 제시가 결여된 채, 원론적 주장과 당위 논리로 채워졌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는 학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모두 설득력이 약하다.
또 하나의 모순은 오세훈이 시기상의 긴박성을 주장한 대목이다. 책 제목에 *“왜 지금”*이라고 강조한 만큼, 그는 개헌이 시급하다고 역설했을 것이다. 그러나 2016년 당시 개헌을 둘러싼 정치 일정과 여건을 보면, 대통령 선거를 앞둔 정략 계산이 분명히 존재했다. *“지금이 아니면 20년간 어렵다”*는 식의 주장은 근거가 빈약한 공포 조장에 가깝다. 헌법은 일종의 사회 계약인데, 졸속이나 조급함이 개입하면 오히려 더 두고두고 문제를 남긴다. 그럼에도 그가 시한부 주장처럼 몰아세운 것은 독자를 설득하기 위한 수사적 장치였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 말기와 이어진 문재인 정부 초기까지 개헌 논의가 지속되었지만, 곧 현실 정치의 벽에 부딪혀 무산된 바 있다. 이로 미루어 *“지금”*이란 주장의 타당성은 떨어졌고, 결과적으로 그의 책은 한때의 정치 캠페인용 팸플릿처럼 되어버렸다. 시급성을 강조한 논리가 현실에서 구현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책의 주장은 시간의 시험을 견디지 못한 셈이고 신뢰성에도 타격을 입었다.
끝으로, 오세훈 본인의 정치적 입장 변화도 책의 주장을 반추하게 만든다. 그는 2016년 개헌을 주장했지만, 이후 자신이 속한 보수정당이 집권하고 본인이 서울시장에 재도전할 때는 개헌 이슈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 정권 교체 후 개헌 논의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자 조용해진 태도를 보면, 과연 그의 주장이 일관된 신념에서 나온 것이었는지 의구심이 든다. 만약 정권 상황에 따라 개헌에 대한 열정이 달라진 것이라면, 이 책의 진정성은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맥락적 모순 역시 독자가 비판적으로 따져볼 부분이다. 요컨대 『왜 지금 국민을 위한 개헌인갱는 대의와 논리를 갖추려 했으나, 그 논거의 타당성과 성실성 면에서 다수의 빈틈을 노출하고 있다. 이러한 허점들은 저자의 논지가 정치적 수사에 불과했는지, 아니면 깊은 숙고에 기반한 것이었는지를 가르는 지표가 될 것이다.
결론
오세훈의 『왜 지금 국민을 위한 개헌인갱에 대한 정치학적 비판 분석을 종합하면, 그의 주장은 국민주권 실현을 내세운 개헌 논의이지만 이념적 편향성과 정치적 속셈으로 얼룩져 있으며, 민주주의 발전이라는 목표와는 모순된 경향을 보인다. 포퓰리즘 이론으로 볼 때 그는 *“국민”*을 수사학적으로 동원하여 자신의 의제를 정당화했고, 신자유주의 관점에서 보면 시장 친화적 보수이념을 개헌 담론에 투영시켰다. 권위주의 연구의 시각에서는 그의 행동이 민주절차를 도구화하여 권력을 재편하려는 엘리트주의적 면모를 띠며, 정당정치와 양극화 측면에서는 개헌 담론 자체가 분열과 갈등을 내포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마키아벨리, 슘페터, 아렌트, 달, 린츠 등의 이론적 렌즈를 통해 평가해본 결과, 그의 주장은 권력 의지의 표현이지 순수한 개혁 이상이라 보기 어렵다. 마키아벨리는 권력자의 계산된 행보로, 슘페터는 민주주의를 오인한 엘리트 주창으로, 아렌트는 사실과 허구가 뒤섞인 선전으로, 달은 다원주의를 약화시킬 위험으로, 린츠는 민주주의를 내부에서 좀먹는 행태로 그의 책을 바라볼 것이다. 이러한 다각도의 비판은 모두 한 지점에서 수렴한다. 헌법 개정이라는 중차대한 과제가 특정 정치인의 야심과 진영논리에 예속될 때, 민주주의의 토대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다.
결국 *“국민을 위한 개헌”*이라는 오세훈의 기치는 그 진의를 엄격히 검증받아야 한다. 헌법은 국민 모두의 것이며, 이를 고치는 일은 단지 몇몇 정치 지도자의 프로젝트가 아니다. 오세훈의 책은 헌법 논의를 대중화했다는 점에서 일면 기여도 있으나, 그 접근 방식과 내용에서 나타난 비민주적 함의와 논리적 결함은 심각한 우려를 낳는다. 민주주의의 강화는커녕 자칫 민주주의 후퇴를 가져올 수 있는 위험한 지름길이 개헌이라는 이름으로 제시된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대한민국의 민주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은 졸속이 아닌 숙의와 합의, 특정 진영의 이익이 아닌 보편적 헌정 가치의 구현이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오세훈의 『왜 지금 국민을 위한 개헌인갱는 개헌 담론을 촉발한 문제작이지만 정치학적 평가에서는 혹독한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국민을 앞세운 개헌 논의가 정작 국민에게는 득보다 실이 될 수 있음을 이 비판적 분석을 통해 환기하며, 개헌에 대한 더욱 성숙하고 책임있는 논의가 뒤따르길 기대한다.
주요 참고 문헌:
•Niccolò Machiavelli (1532). The Prince. (마키아벨리 저, 『군주론』)
•Joseph A. Schumpeter (1942). Capitalism, Socialism and Democracy. (슘페터 저,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Hannah Arendt (1951). 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 (아렌트 저, 『전체주의의 기원』)
•Robert A. Dahl (1961). Who Governs? Democracy and Power in an American City. (달 저, 『누가 통치하는갱)
•Juan J. Linz (1978). The Breakdown of Democratic Regimes. (린츠 저, 『민주정 체제의 붕괴』)
•Cas Mudde & C. Rovira Kaltwasser (2017). Populism: A Very Short Introduction. (카스 무데 등, 『포퓰리즘』)
•기타: KBS 뉴스 보도 (2014) , Firenze의 식탁 (2023) 개헌 관련 칼럼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