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다시 성장이다 서평
오세훈은 대한민국 보수 진영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현재 서울특별시장직을 역임하고 있다. 그의 정치 경력은 2006년 서울시장 당선부터 2011년 무상급식 주민투표 사태로 인한 사퇴, 그리고 2021년 보궐선거를 통한 서울시장 복귀에 이르기까지 기복이 심했다. 이러한 행보 속에서 오세훈은 반복적으로 우파적 입장과 대중적 호소에 기반한 정치 전략을 구사해왔으며, 일각에서는 이를 극우 포퓰리즘적 행태로 비판한다. 특히 그는 급진적 복지 확대를 “포퓰리즘”이라 규정하며 반대하고, 경제 성장 위주의 보수적 의제를 강조해왔다. 이러한 정치적 움직임과 더불어 오세훈은 저서 『다시 성장이다』를 통해 자신의 정치 철학을 제시했는데, 이 책에서도 성장 중심의 담론으로 좌파 진영의 분배정책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본 글은 정치학적 관점에서 오세훈의 정치 행보와 『다시 성장이다』의 논지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포퓰리즘, 권위주의, 정당정치, 양극화, 극단주의 정치, 민주주의 후퇴 이론 등 현대 정치학의 이론적 틀을 적용하고, 마키아벨리, 슘페터, 한나 아렌트, 로버트 달, 후안 린츠 등의 고전적 이론가들의 관점을 반영하여 논의를 전개할 것이다. 이러한 이론적 조명을 통해 오세훈의 정치 전략이 갖는 함의와 민주주의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그의 담론에 내재한 논리적 모순을 다각도로 평가해보고자 한다.
오세훈의 정치 행보: 극우적 경향과 대중 선동
보수 정치인으로서의 부상과 좌절
오세훈은 2000년대 중반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의 신진 보수 정치인으로 부상하여, 2006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당선되며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그는 도시 개발과 세련된 이미지를 내세워 중도보수 성향 유권자까지 포괄하는 전략을 취했으나, 동시에 복지 확대 등에 대해선 회의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이러한 입장은 2010년 서울시 의회의 친환경 무상급식 조례에 대한 그의 반대로 구체화되었다. 2011년 오세훈은 서울시 무상급식 정책을 둘러싸고 주민투표를 강행하며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시험대에 올렸다. 당시 오세훈은 **부유층 자녀에게까지 무료급식을 제공하는 보편적 복지는 “나쁜 포퓰리즘”**이라 비난했고 , 선별적 복지만이 재정의 지속가능성과 공정성을 담보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주민투표에서 자신의 안이 부결될 경우 시장직을 사퇴하겠다는 배수진을 치는 고강도 정치 전략을 구사했다 . 이러한 결정은 마키아벨리적 관점에서 볼 때 권모술수라기보다는 고위험의 도박이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에게 **“운명(fortuna)에 자신을 내맡기지 말라”**고 조언하지만, 오세훈은 주민들의 판단에 자신의 정치 생명을 맡기는 모험을 선택했던 것이다. 결국 투표율 미달로 주민투표는 무산되었고, 그는 스스로 약속한 대로 즉각 사퇴하였다. 이 에피소드는 오세훈 정치 행보의 양면성을 보여준다. 한편으로 그는 원칙을 앞세운 결단력 있는 지도자의 모습을 연출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대의민주주의(시의회)를 우회하여 직접민주주의적 수단으로 여론에 호소함으로써 포퓰리즘적 성향을 드러냈다는 비판을 받았다. 로버트 달의 이론에 따르면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책은 숙의와 협상을 통해 결정되어야 하는데, 오세훈은 제도권(서울시의회)을 건너뛰고 직접 투표에 호소함으로써 민주적 절차를 우회했다는 지적이 가능하다 (Dahl, 1989). 이는 대표 민주주의와 정당정치의 질서를 흔드는 선동 정치로 볼 소지도 있다.
주민투표 사퇴 후 정치적 휴지기를 거친 오세훈은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통해 화려하게 복귀하였다. 박원순 시장의 갑작스런 공석으로 치러진 이 선거에서, 오세훈은 국민의힘 후보로 나서 범야권 단일후보가 되는 전략적 선택을 했다. 그는 경쟁자였던 안철수와 후보 단일화를 위한 여론조사 경선을 수용함으로써 야권 표 결집을 극대화하였다. 이 과정에서 자신이 불리할 경우 물러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며 실리를 챙긴 것은, 마키아벨리가 말한 **“여우 같은 교활함”**으로 권력을 얻는 행보로 평가될 수 있다 (Machiavelli, 1532/2008). 결국 야권 단일후보가 된 오세훈은 4·7 보궐선거에서 승리하여 서울시장에 재입성했다. 이 선거에서 두드러진 현상은 세대별·성별 양극화였는데, 특히 20대 남성층의 압도적 지지가 오세훈 승리의 큰 원동력이 되었다 . 실제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20대 남성의 70% 이상이 오세훈을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Kim, 2022), 이는 한국 정치 지형에서 청년 남성들이 급격히 우경화되는 조짐으로 해석되었다. 이러한 ‘이대남’의 보수화는 반페미니즘 정서와 불공정 담론에 기반한 것으로 분석되며, 오세훈과 국민의힘은 이를 암묵적으로 활용하였다(Kim, 2022). 이는 우파 포퓰리즘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포퓰리즘 이론가인 카스 무데에 따르면 우파 포퓰리즘은 종종 젠더나 이민자 등 소수자 집단을 _“순수한 국민” 대 “위험한 타자”_의 구도로 이용하는데 (Mudde, 2004), 한국의 경우 **“페미니스트”**가 청년 남성의 불만을 투사하는 대상이 된 것이다. 한나 아렌트의 통찰에 따르면 이러한 사회적 분노의 표적화는 전체주의적 움직임의 초석이 될 수 있다(Arendt, 1951). 실제로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대중의 불안과 적개심을 하나의 적대 대상으로 집중시키는 이데올로기의 위험성을 경고했는데, 오세훈 캠프와 보수 정당이 청년 남성들의 분노를 “공정성을 해친 페미니즘”에 돌리는 암묵적 선동을 활용한 것은 민주주의 건강성 면에서 우려를 산다. 정치 양극화도 이 과정에서 심화되었다. 20대 여성 유권자들은 반대로 진보 후보를 택하며 성별 간 대립 구도가 선명해졌고, 이에 따라 정책에 대한 이성적 토론보다 정체성 정치와 감정 동원이 선거를 지배하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포퓰리즘적 대중 동원 전략의 전형으로, 감정과 분노가 숙의와 타협을 대체하는 민주주의 퇴행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Levitsky & Ziblatt, 2018).
극우적 성향과 정치 전략의 특징
오세훈의 최근 행보는 그를 전통적인 온건 보수라기보다는 극우에 가까운 우파 포퓰리스트로 분류하려는 시각도 나타나게 했다. 그는 2022년 이후 보수 여권이 집권하면서 자신이 추진하는 의제들을 한층 강경하게 표출하고 있다. 특히 문재인 정부 등 이전 진보 정권에 대한 강한 적개심과 비난이 두드러진다. 오세훈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재정 지출 정책 등을 맹비판하며 이를 **“조급한 포퓰리즘의 폐해”**로 규정하였다 . 예컨대 그는 “문재인 정부 시기에 집값 폭등과 자산 격차 확대가 벌어졌는데, 이것은 시장의 원리를 무시한 포퓰리즘 정책의 결과”라고 단언한다 . 또한 코로나19 시기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에 대해서도 “공무원이나 대기업 직원처럼 필요 없는 사람에게도 돈을 준 것이 과연 타당했느냐”고 반문하며 **선별복지의 원칙과 ‘상벌에 따른 복지’**를 강조했다 . 이런 주장은 재정을 고려하지 않은 진보 진영의 포퓰리즘을 질타하는 동시에, 본인을 재정 책임성을 갖춘 합리적 리더로 대비시키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이분법적 프레임 자체가 일종의 선동 정치라 할 수 있다. 즉, 자신의 정책은 **“합리적·애국적”**이고 상대 진영의 정책은 **“비합리적·국가에 해를 끼치는 포퓰리즘”**이라고 규정함으로써 유권자들의 감정적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정치적 경쟁자를 도덕성/합리성에서 열등한 존재로 묘사하여 대중의 지지를 결집시키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수사다 (Müller, 2016). 후안 린츠의 이론에照하면 민주주의가 붕괴하는 전조 중 하나는 정치 지도자들이 상대 진영의 정당성과 애국심을 공개적으로 부인하는 행태인데 (Linz, 1978), 오세훈이 진보 세력을 국가의 장래를 해치는 포퓰리스트로 매도하는 담론은 이러한 우려와 맞닿아 있다. 실제로 그는 신간에서 **“보수를 극우라 부르는 것은 맞지 않는다. 어떤 극우가 있다는 말인갚**라며 자신과 여권을 극우로 규정하는 시각에 반발하면서, **“전 정권의 실정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정당화하였다 . 이는 자신들의 공격적 행태를 국민정서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논리로, 대중의 분노를 정치적으로 조직화하는 행위이다. 한나 아렌트는 이처럼 분노와 증오에 기반한 정치가 얼마나 쉽게 민주주의를 좀먹는지 지적한 바 있다(Arendt, 1951). 아렌트에 따르면 진실 대신 적개심이 동원의 도구가 되는 정치에서는 합리적 담론이 설 자리를 잃고, 극단주의 운동이 힘을 얻는다. 오세훈이 **“좌파 포퓰리즘에 대한 분노”**를 정치 동력으로 삼으려는 모습은 이러한 위험성을 내포한다.
오세훈의 정치 전략은 표면적으로는 도시 행정 전문가이자 경제통의 이미지를 부각하면서, 이면으로는 대중의 불만을 정확히 포착하여 메시지를 던지는 이중적 접근을 취한다. 그는 서울시장으로 복귀한 이후 부동산 규제 완화, 재개발 추진, 각종 경제활성화 정책을 신속히 펼치며 성과주의 행정가의 면모를 보였다. 이를 통해 서울시민들에게 유능한 관리자로 인정받고자 하는 한편, 이러한 정책 기조에 반대하는 진보진영에 대해서는 앞서 언급한 대로 이념적 공세를 펼쳤다. 이 같은 투트랙 전략은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조언한 **“여우와 사자의 결합”**에 비유될 수 있다 (Machiavelli, 1532/2008). 즉, 여우처럼 교묘하게 대중의 심리를 읽고 함정을 피하면서도, 사자처럼 과감한 실행력으로 성과를 내는지도자의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또한 군주가 백성들의 사랑을 잃지 말 것을 강조했는데, 오세훈의 경우 일부 계층의 지지를 얻는 대신 다른 계층의 강한 반감을 사고 있다는 점에서 위험요소가 있다. 예를 들어, 그의 반(反)보편복지 입장은 사회적 약자나 복지 확충을 바라는 계층에게는 냉담하고 비정한 지도자로 비칠 수 있다. 실제로 2021년 보선과 2022년 대선에서 2030 여성, 저소득층, 진보 성향 유권자들은 국민의힘에 등을 돌리는 양상을 보였다 . 이는 오세훈을 비롯한 보수 지도부의 전략이 특정 집단의 지지는 강화하지만 사회 통합에는 실패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정치의 양극화라는 큰 흐름 속에서 이러한 전략은 단기적으로 표를 얻을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 민주주의의 통합적 기능을 약화시킬 수 있다. 로버트 달은 민주주의 체제가 유지되려면 상대 진영에 대한 관용과 시민들의 다양한 요구 반영이 필수라고 보았다(Dahl, 1989). 하지만 오세훈의 정치에서는 적대와 배제의 논리가 두드러져, **상호 관용(mutual toleration)**이나 **제도적 자제(forbearance)**와 같은 민주주의의 관습이 약화되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 (Levitsky & Ziblatt, 2018). 요컨대, 오세훈의 극우적 경향성과 선동적 전략은 그 자신이 의도했든 아니든 한국 민주주의의 분열을 심화시키고 권위주의적 퇴행을 초래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다시 성장이다』의 주요 논지와 비판적 분석
성장 담론으로의 회귀: 주요 내용 정리
오세훈은 2023년에 펴낸 저서 『다시 성장이다』를 통해 자신의 국가 비전과 정책 철학을 종합적으로 제시하였다. 이 책에서 가장 핵심적인 주장은 **“이념적 진영 논리를 넘어 다시 경제성장 중심으로 국가운영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 그는 대한민국 정치에서 흔히 대립되는 진보 대 보수, 분배 대 성장 구도가 **“기계적 이분법”**에 불과하다고 비판하며, 더 이상 진영논리에 매몰되지 말고 실용적으로 국가의 부를 키우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 특히 보수정당을 향해 붙는 “부자 정당” 이미지에 동의할 수 없다면서, **“개인의 부가 아닌 국가의 부를 키우는 것”**이 진정한 보수의 지향점이라고 주장한다 . 이는 개인의 부의 평등한 분배보다 국가 전체의 경제파이를 키우는 데 집중하겠다는 선언으로 읽힌다.
구체적으로, 오세훈은 문재인 정부 등 이전 진보 정권의 경제·복지 정책을 ‘조급한 포퓰리즘’으로 규정하고 그것이 한국 경제에 부정적 후유증을 남겼다고 서술한다. 예를 들어 앞서 언급한 부동산 가격 폭등과 자산 양극화를 진보 정권의 과도한 시장개입과 복지 남발 탓으로 돌린다 . 그는 **“좌파 포퓰리즘 정부야말로 부동산 불평등의 책임자”**라며, 자유시장 원리에 따른 공급 확대와 기업 활동의 촉진만이 해법이라고 강조한다. 또한 코로나19 시기의 보편적 재난지원금 정책을 사례로 들어, **“월급 받는 사람들까지 지원금을 준 것이 옳은갚**라는 반문과 함께 보편 복지는 비효율적이며 선별 복지가 정의에 부합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 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복지는 필요한 사람에게 선택적으로 제공하고, 노력한 사람이 보상받도록 해야 한다”**는 공리주의적·공정주의적 복지관을 제시한다 . 한편, 한국 사회의 당면 위기로 저출산·고령화를 지목하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민연금 개혁, 정년 연장 등의 구조개혁을 논의해야 한다고 언급한다 . 이는 복지 지출의 증가를 야기하는 인구구조 문제에 대한 보수적 해결책을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오세훈이 책에서 **‘다섯 가지 동반자’**라는 개념을 통해 성장담론의 포용적 측면을 부각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 그가 열거한 다섯 가지 동반자는 도전과 업적, 약자, 미래세대, 지역, 국제사회이다. 이는 성장 정책을 추진함에 있어 이 다섯 영역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인다. 예를 들어 성장은 약자와 함께 가야 하고(약자를 배려), 미래세대의 부담을 늘리지 않아야 하며(지속가능성), 지역 간 균형발전을 도모하고 국제사회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언급은 그가 성장 일변도의 냉혹한 시장만능주의자로 비치는 것을 경계하고, 자신의 정책 구상이 사회적 약자와 장기적 관점도 아우르는 것임을 강조하려는 노력으로 풀이된다. 책의 말미에는 진중권 교수와의 대담을 수록하여 자신의 생각을 지식인과 토론하는 형식을 취했는데, 이를 통해 이념적 편향이 아니라 합리적 논의에 열려 있다는 이미지를 주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다시 성장이다』는 **“분배보다는 성장”**이라는 보수진영의 전통적 기조를 재확인하면서도, 포용과 지속가능성의 담론을 곁들여 시대에 맞게 업그레이드한 정치 선언문이라 할 수 있다.
성장 담론의 정치학적 비판
『다시 성장이다』에서 오세훈이 내세운 논리는 표면적으로 경제적 실용주의와 국민통합을 지향하는 듯하지만, 정치학적으로 분석해보면 여러 비판적 쟁점과 모순이 드러난다. 우선, 그가 주장하는 “진영을 넘어선 성장” 담론은 사실상 기존 보수 이념의 재포장에 가깝다는 지적이 가능하다. 좌우 이념구도의 극복을 말하고 있으나, 결국 제시된 정책은 전형적인 우파 경제정책 — 감세와 기업 규제 완화, 선별적 복지, 연금개혁 등 — 에 방점이 찍혀 있다. 이는 과거 이명박 정부의 ‘비즈니스 프렌들리’ 기조나 박근혜 정부 초기의 창조경제 담론과 크게 다르지 않은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오세훈은 마치 새로운 탈이념적 어젠다를 제시하는 것처럼 포장하고 있는데, 이러한 레토릭 전략 자체가 마키아벨리적 통치술의 한 예라 할 수 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백성들에게 인기 있는 구호를 내걸되, 실제로는 권력을 공고히 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조언한 바 있다 (Machiavelli, 1532/2008). 오세훈이 “보수=부자 정당” 프레임을 부정하며 국가의 부 창출을 통한 모두의 번영을 말하는 것은, 겉으로는 공동체 전체를 위한 것처럼 들리지만 결국 기업과 성장위주의 정책을 정당화하려는 수사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정치적 메시지와 실제 정책 사이의 간극으로서, 유권자들에게 인기를 얻고자 하는 정치인들이 흔히 사용하는 수법이다. 조지프 슘페터의 민주주의 이론에 의하면, 선출직 정치인은 유권자의 표를 얻기 위해 경쟁하는 기업가와 같아서, 정책 공약과 이념도 하나의 **‘마케팅 상품’**처럼 취급된다 (Schumpeter, 1942). 오세훈의 성장담론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정치 시장에서 유통되는 상품이라 볼 수 있다. **“다시 성장”**이라는 슬로건은 마치 **“더 나은 미래를 보장하는 상품”**처럼 포장되어 유권자들에게 제시되지만, 그 실질은 기존 보수 엘리트들이 선호하는 정책 패키지인 것이다. 슘페터는 이러한 현실정치를 민주주의의 엘리트 경쟁 모델로 옹호했지만, 동시에 대중이 정치적 결정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못하고 피동적으로 선호를 소비하는 한계도 지적했다 (Schumpeter, 1942). 오세훈의 책은 대중과 소통하는 형식을 취했지만, 정작 책의 방향은 위로부터의 비전 제시이지 아래로부터의 의견 수렴이 아니다. 이는 민주주의의 참여적 이상과는 거리가 있으며, 정치과정이 일방향적이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또한 오세훈의 주장은 몇 가지 논리적 모순과 경직된 이념성을 내포하고 있다. 첫째, 그는 진보 진영의 복지 정책을 포퓰리즘으로 매도하지만, 이러한 포퓰리즘 담론 자체가 일종의 정치 선전에 가깝다. 예를 들어 그는 문재인 정부의 주택 정책 실패를 “조급한 포퓰리즘의 결과”라고 단정했는데 , 과연 부동산 가격 상승이 복지정책 때문인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다. 부동산 문제는 저금리 기조, 투기적 수요, 공급 부족 등 복합적 요인에 기인한 것인데, 이를 단순히 진보정부의 포퓰리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정치적 편의에 따른 인과관계 왜곡이다. 한나 아렌트는 이러한 정치적 거짓말과 사실 왜곡이 누적될 때 공적 진실의 붕괴를 가져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지적했다(Arendt, 1972). 오세훈이 정책 실패의 복잡한 원인을 무시하고 상대 진영의 이념 탓으로 환원하는 태도는, 정책 논의를 이성적 토론의 장이 아니라 이념적 낙인찍기의 장으로 변질시킨다. 이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진실에 기반한 의사소통을 중시한 아렌트의 관점에서 볼 때 위험한 징후다. 둘째, 오세훈은 사회적 약자와 미래세대를 생각한다고 강조하지만, 정작 제안하는 정책들은 직접적으로 약자를 지원하거나 불평등을 완화하는 데 소홀하다. 선별 복지는 한정된 재원을 가장 필요한 곳에 쓴다는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중간층의 지지를 잃기 쉽고 복지에 대한 보편적 사회연대감을 약화시킨다는 단점이 있다. 로버트 달은 심각한 경제적 불평등은 정치적 평등을 훼손하여 민주주의를 약하게 만든다고 경고했다(Dahl, 1989). 만약 오세훈의 주장대로 보편적 복지를 축소하고 시장에 맡기는 방향으로 나갈 경우, 한국 사회의 경제적 격차는 더욱 커질 가능성이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정치적 영향력의 불평등으로 이어져 민주주의의 “다원주의적 권력균형” (polyarchy)을 깨트릴 수 있다. 예컨대, 부유층과 기업에 유리한 정책이 계속될수록 자본의 정치 영향력은 커지고 노동자나 빈곤층의 목소리는 작아지는 경향이 강화될 수 있다. 이는 **“국가의 부”는 늘지만 **“시민 간 형평”**은 악화되는 시나리오로, 오세훈이 말하는 국가 전체의 성장이 과연 누구를 위한 성장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한다.
셋째, 포퓰리즘에 대한 이중적 태도도 문제로 지적된다. 오세훈은 좌파의 포퓰리즘을 맹비난하면서 자신은 포퓰리즘과 거리가 먼 듯이 말하지만, 정작 그의 정치 행보와 수사에는 우파적 포퓰리즘의 요소가 적지 않다. 앞서 살펴본 대로 반(反)페미니즘 정서 활용, “KOREA Growth Again(KOGA)”과 같은 선동적 슬로건 사용, 직접민주주의적 주민투표 활용 등은 모두 대중의 감정에 호소하는 포퓰리즘적 정치 양식이다 . 특히 KOGA라는 구호는 **도널드 트럼프의 “Make America Great Again”**에서 착안한 것으로, 오세훈이 미국식 우파 포퓰리즘의 홍보 기법을 국내 정치에 도입했음을 보여준다 . 이는 국민정서에 직접 호소하여 기존 질서를 흔드는 전략으로, 한편으로는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책 담론을 단순화하고 흑백논리로 몰아가는 위험이 있다. 예컨대 “다시 성장”이라는 구호 아래 복잡한 분배 정의의 문제, 환경 지속가능성의 문제, 노동권 보호의 문제 등이 가려질 수 있다. 모든 것을 성장률로 환원하는 담론은 경제성장 이외의 사회적 가치를 폄하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 이는 한나 아렌트가 우려한 **“경제 사회화된 정캇**의 극단이라고 할 수 있다(Arendt, 1958). 아렌트는 현대 사회에서 정치 영역이 경제 문제(생산과 소비)의 논리에 잠식되면서 진정한 공론과 시민적 자유가 위축되는 현상을 비판했다. 오세훈의 담론에서 나타나는 **‘성장만이 살 길’**이라는 논리는 정치의 다른 가치(자유, 평등, 연대 등)를 부차화함으로써 전체주의적 사고의 싹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오세훈이 전체주의를 지향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정치의 경제화 경향이 민주주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아렌트식 경계를 적용해볼 필요는 있다.
넷째, 오세훈의 정치적 비전이 권위주의적 통치와 닿을 가능성에 대한 경계도 필요하다. 그가 책에서 제안한 것 중 하나로 ‘기업성장부총리’ 신설이 있다 . 이는 정부 내에 기업 성장만을 전담하여 규제를 혁파하는 컨트롤타워를 두겠다는 구상인데, 얼핏 보면 기업 활력을 높이는 혁신적 아이디어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러한 발상은 국가권력을 경제성장에 총동원했던 개발독재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박정희 정권 같은 권위주의 체제는 경제개발을 최우선 목표로 삼아 정부 조직과 정책을 동원했고, 그 성과로 고도성장을 이루었지만 정치적 자유와 노동권을 억압했다. 오세훈이 지향하는 바가 그와 동일하다고 할 수는 없으나, **“성장을 위해서는 강력한 국가 개입도 불사한다”**는 식의 접근은 자칫하면 권위주의로 기울 수 있는 길이다. 후안 린츠는 권위주의 체제의 특징으로 제한적 다원주의와 정치적 동원의 편의적 활용을 들었는데(Linz, 1975), 오세훈의 비전은 경제 분야에 있어서만큼은 정부가 강하게 이끌고 나머지 분야에서는 정치적 경쟁을 제한하려는 인상을 준다. 예를 들어 노동계의 반발이나 시민단체의 이견보다 경제적 성과를 우선한다면, 정책 결정 과정에서 다원적 이해관계의 조정이 무시될 수 있다. 이는 정당정치와 시민사회가 발전한 민주국가에서는 갈등과 토론을 통해 정책을 만드는 일반적인 절차와 배치된다. 결국 경제적 효과라는 명분 하에 민주적 절차의 약화를 정당화할 위험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오세훈의 주장은 민주주의의 질적 후퇴를 가져올 수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요컨대, 『다시 성장이다』는 한국 보수 정치의 전통적 성장지상주의를 현 시대 상황에 맞게 재해석한 저작으로 볼 수 있으나, 그 내용에는 포퓰리즘적 수사, 논리의 비약과 왜곡, 민주주의 가치에 대한 경시가 혼재되어 있다. 정치학적 관점에서 이는 고전적 민주주의 이념과 상충되는 부분이 많다. 자유민주주의는 단순히 경제지표의 향상만이 아니라 정치적 자유, 사회적 평등, 공동체적 연대 등의 가치를 균형 있게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오세훈의 담론은 경제성장이라는 한 가지 목표에 과도하게 경도되어 있어, 다원적 가치의 조화라는 민주주의의 이상과 충돌한다. 이러한 일면적 성장담론이 현실 정치에서 구현될 경우, 분배 정의의 후퇴와 사회 양극화 심화로 인해 오히려 정치적 불안정과 민주주의 침식을 초래할 수 있다. 경제적 성과만을 앞세우다 민주주의 기반이 흔들린 역사적 사례는 세계 여러 국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컨대 중남미의 일부 포퓰리스트 정권이나 아시아의 개발독재 경험은 초기에는 경제에 성과를 냈어도 결국 권위주의로 흐르거나 사회갈등을 증폭시켜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 (Linz & Stepan, 1978). 오세훈의 주장이 한국을 그런 방향으로 이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정치학자들의 경고를 무시한 성장 일변도의 정치는 늘 부작용을 낳았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결론: 극우적 정치와 민주주의에 대한 함의
오세훈의 정치 행보와 『다시 성장이다』를 통해 드러난 그의 정치철학은 경제성장 우선주의를 기치로 한 우파 포퓰리즘의 한 단면이라 요약할 수 있다. 그는 대중의 욕구와 정서를 정확히 파악하여 자신의 정치적 목적에 맞게 동원하는 능력을 보여주었으며, 동시에 전통적 보수 정책을 새로운 슬로건으로 포장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이러한 정치적 수완은 그에게 서울시장 4선이라는 성공을 안겨주었지만,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의 심화보다는 퇴행을 우려하게 만드는 그림자도 드리웠다. 마키아벨리의 관점에서 볼 때 오세훈은 **권력을 잡는 데 능란한 “군주”**처럼 행동해왔으나, 마키아벨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했던 공화국의 안정이라는 가치에는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있다. 슘페터식으로 말하면 그는 “정치 시장”에서 능숙한 기업가처럼 유권자들에게 자신의 상품(정책)을 팔았지만, 시민들의 실질적 정치 참여와 판단은 부차화되었다. 한나 아렌트가 우려한 대로, 그의 정치에는 사실의 왜곡과 적대적 세계관이 엿보이며, 이는 공론장의 건전성을 해칠 수 있다. 로버트 달의 이론에照하면 민주주의는 경쟁과 협력이 균형을 이뤄야 하는데, 오세훈의 경쟁적이고 편가르기식 정치는 협치와 포용의 정신을 약화시켰다. 후안 린츠의 연구는 민주주의가 무너지기 쉬운 조건을 경고하는데, 그 중 하나가 지도자들의 비타협적 태도와 극단화이다 (Linz, 1978). 오세훈과 국민의힘이 보여주는 강대강 대결구도, 상대를 향한 지속적 비난은 한국 민주주의의 제도적 균형과 관용의 문화를 훼손할 가능성을 내포한다.
물론 오세훈의 옹호자들은 그의 정책이 침체된 한국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을 현실적 대안이라고 평가할 것이다. 정체된 성장률, 인구 위기, 국제 경쟁 등의 도전에 직면한 상황에서 친기업적 성장 전략은 유효할 수 있다는 현실론도 존재한다. 그러나 민주주의 정치에서 과정과 절차의 정당성, 다원적 가치의 균형은 결과만큼이나 중요하다. 포퓰리즘적 동원과 극단적 이념 대립을 통해 단기 성과를 추구하는 정치는 결과적으로 민주주의의 장기적 건강성을 해칠 위험이 있다. 최근 세계 각국에서 나타난 민주주의의 후퇴 현상을 보면, 처음에는 합법적으로 선출된 지도자가 갈등을 부추기고 상대를 배제하면서 서서히 자유와 견제의 기관들을 무력화시키는 공통된 패턴이 있다 (Levitsky & Ziblatt, 2018). 한국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며, 오세훈의 정치 행보는 그러한 세계적 흐름의 일부로 볼 수 있다면 경계해야 한다. 특히 그가 장차 대권을 염두에 두고 이 같은 담론과 전략을 전개하는 만큼, 중앙정치로 무대가 옮겨질 때 민주주의에 미칠 파장은 더욱 클 수 있다. 포퓰리즘, 권위주의, 극단주의 정치의 유혹은 경제위기나 사회불안 시기에 더욱 강해지기 마련이고, 오세훈은 그 교차로에 서 있는 인물이다.
결론적으로, 오세훈의 극우적 경향과 성장담론은 한국 민주주의의 현 주소와 향후 경로에 대한 하나의 시험대라 할 수 있다. 그의 정치가 성공하여 한국 사회가 안정과 번영을 이루면서도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켜낸다면, 이는 새로운 보수 리더십의 모범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의 길이 사회적 약자 배제, 정치 양극화 심화, 민주적 절차 훼손으로 이어진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의 퇴행을 의미할 것이다. 정치학적 분석을 통해 볼 때 현재까지의 징후는 후자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키는 부분이 적지 않다. 성장은 수단이지 민주주의의 궁극 목적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바람직한 지도자는 성장과 분배, 효율과 정의, 대중의 열망과 제도적 안정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오세훈의 정치와 『다시 성장이다』의 담론은 균형추가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포퓰리즘적 열광 대신 성찰과 토론, 진영 논리 대신 상호 존중과 타협이 한국 정치문화에 뿌리내릴 때에야 비로소 지속가능한 성장도 담보될 것이다. 민주주의의 후퇴를 경계하며, 오세훈 현상을 바라보는 시민과 학자들의 비판적 시선은 이러한 균형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일 것이다.
참고문헌 (APA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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