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무엇일까? 한병철의 『에로스의 종말』은 이 오래된 질문을 다시금 성찰하게 만든다. 이 책은 사랑의 사라짐에 대한 철학적 진단이자,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문화비평이다. 그는 말한다. 사랑은 본질적으로 타자의 경험이라고. 그 말은 사랑이 내가 아닌, 나를 넘어선 존재와의 마주침 속에서 시작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이 타자성을 잃어가고 있다. 타자와의 차이와 간격을 통해 열렸던 사랑의 가능성은, 오늘날 동일성의 사회 속에서 점점 폐쇄되고 있다.
타자성이 옅어질 대로 옅어진 지금, 우리는 혹시 ‘동일화의 지옥’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현대 사회는 낯섦을 견디지 못하고, 모든 것을 나와 비슷하게 만들려 한다. 타인을 타인으로 받아들이기보다, 나와 닮은 무언가로 환원시키는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다. 그렇게 우리는 점점 고립된다. 나르시시즘이 일상화된 이 시대에, 타자와의 진정한 마주침은 점점 불가능해진다. 현대인의 모습은 어쩌면 ‘우울한 나르시시스트’ 그 자체다. 무수한 관계 속에서도 누구와도 진정으로 연결되지 못한 채, 자신만을 들여다보는 외로운 거울놀음 속에 빠져 있다.
심지어 성애마저 소비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성애는 더 이상 내면의 떨림도, 타자와의 마주침도 아니다. 욕망의 교환으로 포장된 성애는, 더 자극적이고 더 빠른 만족만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소비된다. 그 결과, 오히려 아무것도 성애적이지 않은 시대가 도래했다. 타자를 갈망하는 진실한 욕망 대신, 끊임없는 이미지의 반복과 쾌락의 기계적인 생산만이 남았다.
한병철은 헤겔의 말을 인용한다. “삶은 하나의 결론이다.” 그에 따르면, 우정은 하나의 결론이며 사랑은 ‘궁극적인 결론’이다. 이는 사랑이 삶의 정점에 놓인 존재론적 사건이라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그 ‘궁극’이란 말이 무색하게, 지금 사랑은 더 이상 도달할 수 없는 신기루가 되어버렸다. 자본주의는 사랑조차 상품화하고, 소셜미디어는 욕망을 클릭 가능한 데이터로 환원시킨다. 사랑의 언어는 점점 사라지고, 우리는 더 이상 사랑을 배우지도, 기다리지도 않는다. 사랑은 ‘속도’보다 ‘깊이’를 요구하는데, 우리는 지금 그 깊이를 감당하지 못하는 사회 속에 살아가고 있다.
『에로스의 종말』은 단순히 사랑에 대한 책이 아니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통치 방식, 존재의 위기, 타자와의 관계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다. 이 책을 통해 나는 현대사회를 다시 보게 되었다.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사랑하지 못하게 만드는가? 무엇이 타자와의 마주침을 불가능하게 만드는가? 한병철은 그것을 ‘지나치게 투명해진 세계’에서 찾는다. 모든 것이 보여지고, 측정되고, 소비되는 세계. 그런 세계에서는 사랑조차 ‘노출된 것’의 일부로 전락하고 만다.
사랑이 타자의 경험이라면, 우리는 그 타자를 어떻게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이 책은 결론을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사랑의 종말을 진단함으로써, 우리는 다시 사랑을 꿈꿀 수 있는 계기를 갖게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마주해야 할, 가장 인간적인 과제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