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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운,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에 대한 넋두리
포착
2025-06-17 12:33   조회 : 365

한국의 퀴어 소설은 대개 사소설이나 오토픽션의 형태를 띠고 있다. 하지만 김병운의 소설은 그것들과 약간 결이 다르다. 그는 ‘나’를 직접 드러내기보다는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인물의 내면을 조명하고, 타자의 고통을 응시한다. 그중에서도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은 그 절제된 서사의 정점이라 할 수 있을 거 같다.

소설집에 실린 <11시부터 1시까지의 대구>는 비교적 자전적 정서가 짙게 느껴지는 작품이지만, 그조차도 묘하게 사소설이 아닌 것 같은 분위기에서 작가의 역량을 느낄 수 있다.

표제작인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은 동성애자인 윤범이 성소수자 독서토론 모임에서 만난 주호, 그리고 주호가 무성애자 커뮤니티에서 만난 인주가 함께 사는 집을 찾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주호는 스스로를 양성애자라 정의했으나 이제는 무성애자라는 정체성으로 인주와 동거하는 중이다. 이들의 관계는 사랑의 형태나 성적 지향만으로 단순히 정의되지 않으며, 윤범은 그런 주호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데 있어 오랜 시간 자기중심적인 해석을 견지해왔다.

이 소설이 절절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단지 과거의 연인을 다시 찾는 윤범의 미련 때문만이 아니다. 윤범이 주호에게 했던 무심한 말들 - 차라리 무성애자였으면 좋겠어 - 은 위로인 듯 보이지만, 사실은 주호의 정체성을 자기 방식대로 편의화한 폭력이었다. 이 말들은 침묵의 시간 속에서 부메랑처럼 돌아와 윤범 자신을 비춘다.
 
퀴어 소설을 쓰는 작가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김병운 작가는 정말 좋아한다. 
참 잔잔하고 다정한 문장을 사용하는 작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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