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도 레오폴드(Aldo Leopold, 1887~ 1948)는 현대 환경윤리의 선구적인 인물인데, 마치 원효대사의 해골물 일화처럼
젊었을 때 늑대사냥을 나갔다가 죽어가는 늑대의 눈빛을 보고서 큰 깨달음을 얻은 아주 유명한 일화가 전해집니다.
아래의 글은 알도 레오폴드의 대표적인 저서인 '모래군의 열두달'(도서출판 따님,2002,송명규 번역) 165~166쪽에 실린
일화를 옮겨온 것입니다.
알도 레오폴드가 죽어가던 늑대의 푸른 눈빛을 보고 깨달은 것을 우리는 지리산 반달곰에게도 그대로 적용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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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가르쳐 주어도 알아듣지 못하는 풋내기들만이 늑대가 있는지 없는지를, 또 산이 늑대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없는 생각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할 수 없을 뿐이다.
나의 이런 확신은 내가 한 마리의 늑대가 죽어가던 것을 보았던 그 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는 어떤 높은 바위 벼랑 위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그 아래로는 거센 강물이 굽이쳤다.
우리는 암사슴으로 보이는 짐승이 가슴까지 차는 하얀 급류를 건너는 것을 보았다.
그 놈이 우리쪽 강둑으로 기어올라와 꼬리를 털 때, 우리가 잘못 보았음을 알았다. 늑대였다.
여섯 마리의 다른 늑대들이,분명 다 자란 새끼들이었는데, 버드나무 숲에서 모두 뛰어나와 꼬리를 흔들고 뒤엉켜 장난질치며
어미를 맞이했다.
말 그대로 늑대 떼거리가 우리가 있던 벼랑 아래 평탄한 개활지 가운데서 몸을 뒤틀고 뒹굴며 노는 것이었다.
그 때만 해도 늑대를 사살할 기회를 그냥 지나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우리는 즉각 무리에게 총알을 퍼부었다. 그러나 지나치게 흥분한 나머지 사격은 정확하지 못했다. (가파른 언덕 아래의 목표물을
조준한다는 것은 언제나 쉬운 일이 아니다.)
총이 비었을 때 늙은 늑대는 쓰러졌고, 새끼 한 마리는 빠져나갈 수 없는 돌무더기를 향해 필사적으로 다리를 끌고 있었다.
늙은 늑대에게 다가간 우리는 때마침 그의 눈에서 꺼져가는 맹렬한 초록빛 불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그 때 그 눈 속에서, 아직까지 내가 모르는 늑대와 산만이 알고 있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 뒤로 지금껏 이 일을 잊은 적이 없다.
당시 나는 젊었고 방아쇠 손가락이 근질거려 참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나는 늑대가 적어진다는 것은 곧 사슴이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늑대가 없는 곳은 사냥꾼의 천국이 될 거라고 믿고 있었었다.
그러나 그 초록빛 불꽃이 꺼져가는 것을 본 뒤, 나는 늑대도 산도 그런 생각에 찬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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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군의 열두달'("A Sand County Almanac, 위사진의 왼쪽)은 알도 레오폴드의 에세이집으로서 누구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오른쪽은 "야생의 푸른 불꽃"(달팽이출판 2004, 작은우주 번역)인데 알도 레오폴드의 자서전입니다.
원제는 "Fierce Green Fire"로서 알도 레오폴드가 죽어가던 늑대의 눈빛에서 본 푸른 빛을 가리킵니다.
모래군의 열두달을 읽고 난 뒤 알도 레오폴드에게 더 관심이 생길 경우 읽어볼만 합니다.
지리산 반달곰이 지리산 생태계에서 대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왜 반달곰이 중요한지 이 자리에서 구구절절
다 쓰는 건 너무 고된 작업입니다.
그래서 이 분야의 명저 3권을 소개하는 걸로 대신하려고 합니다.
왼쪽부터...
1. 아름다운 생명의 그물(이본 배스킨 저, 돌베개 2003, 이한음 번역)
2. 녹색세계사(클라이브 폰팅 저, 그물코 2003,이진아 번역)
3. 생명의 미래(에드워드 윌슨 저, 사이언스북스 2005, 전방욱 번역)
이 3권의 책은 자연에 흥미를 느끼고, 산을 아끼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읽어보라고 강추하는, 그야말로
두 말이 필요 없는 보석중의 보석, 명저중의 명저입니다.
그냥 읽어보세요. 읽기 전과 읽고 난 뒤 산이 전과는 아주 많이 다르게 보일 겁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아름다운 생명의 그물'은 초판 발행 이후 추가로 더 찍어내질 못해 시중에서 거의
사라져간다는 점입니다.
새 책을 구할 수 없다면, 알라딘이나 북코아같은 중고서점에서라도 꼭 구하셔서, 그게 어렵다면
도서관에 가서라도 반드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명저가 초판조차 다 팔리지 않아 절판이 되는 게 우리의 추레한 현실입니다.
1백만 부가 판매되는 베스트셀러가 되어도 부족할 판에 말입니다.
'아름다운 생명의 그물'은 반달곰이 왜 지리산 생태계에 중요한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확실한
답변서가 될 겁니다.
'녹색세계사'는 환경과 문명의 충돌이라는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룬 걸작입니다. 부연 설명에 필요 없는
역작입니다.
'생명의 미래'는 미국 하버드 생물학과의 에드워드 윌슨 교수가 쓴, 많고 많은 책중 가장 대표적인
명저입니다.
인류문명이 붕괴되어 후세에 전할 단 한권의 책만을 간직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저는 주저 없이
이 '생명의 미래'를 꼽을 겁니다.
에드워드 윌슨 박사는 개미연구가로 유명한데, 이화여대 최재천 석좌교수가 이 에드워드 윌슨 교수의
제자입니다.
에드워드 윌슨 교수의 책은 모두 다 아주 빼어난 역작들이지만, 그중에서도 '생명의 미래'는
가장 밝게 빛나는 보석입니다.
10년에 한번 이런 책을 만나면 그걸로도 행복한 인생이라 할 정도로 위의 책 3권은 명저중의 명저이니
장마철 산에 가지 못해 주말에 시간이 남게 될 경우, 차분히 읽어볼 가치가 차고도 넘치는 책입니다.
위의 책 3권을 읽고 나면 '산이 전하고는 달라 보인다니까요'
프란츠 카프카가 책은 자고로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쪼개는 도끼가 되어야 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산이 단순히 주말 취미활동의 공간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존재라는 걸 깨닫게 해주는데
위의 책 3권만한 명작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의 '살벌한' 무게를 위의 책 3권을 읽고 나면 다들 깨닫게 되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