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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에서의 한류(몽탄 신도시 등이죠.)는 아무 것도 아닌 수준이였었던 백제의 일본(왜)에 대한 영향력.
 -대한민국파워 2025-03-22 13:11   조회 : 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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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왜)에서는 고구려를 고쿠리(고구려의 약칭인 고려는 고마 이렇게 발음합니다.), 신라는 시라기, 가야는 카라, 카야 이렇게 발음하는데요. 오직 백제에 대해서만 바쿠자이, 하쿠자이가 아닌 쿠다라(구다라)로 발음합니다. 전세계의 역대 국가들 중 오직 백제에 대해서만 저렇게 특이한 발음을 해오고 있는데요. 이는 일본의 건설을 한국계 이주민 집단이 해내었는데, 이 중에서도 백제계 이주민 집단이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해온 것으로 인해 일본에서는 백제를 큰 나라(대국, 대방, 대도)의 상징으로 보았고, 한국어의 큰 나라가 백제의 대명사로 불리었다가, 나중엔 백제를 부를 때 백제 곧 바쿠자이, 하쿠자이가 아닌 쿠다라(구다라)로 부르는 것으로 굳어지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맨 아래의 사진에 보이듯, 일본의 고 우에다 마사아키 교수도 이런 식의 언급을 하기도 했으니 더욱 그러하죠. 일본어의 쿠다라나이(구다라나이)도 백제산이 아니면 볼품이 없다는 의미가 후세에 시시하다는 말로 이어진 것으로 보일 정도이기도 하지요. 이 말고도, 일본에는 일본이 근현대사가 시작되는 시점(기원후 1800년대 중반 시점으로써, 영국에 의해 시작된 산업혁명이 만개되는 시점이기도 하죠.)~현대사 초반부에 이르는 시기 동안 일본 전국에 빼곡하게 존재해오던 한국 관련 지명, 신사들을 정치적인 의미로 삭제, 철거시켰는데도 지금도 여전히 수많은 한국 관련 지명, 신사들이 굉장히 많은 것을 보면, 일본이 한국에게서 분파된 국가임은 물론, 백제가 일본이라는 국가가 형성되는 것에 가장 큰 기여를 끼쳤다는 것을 알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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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原眞人 出自諡敏達孫百濟王也. 續日本紀合
대원진인(오호하라노 마히토)은 민달(비다쓰 천황)의 후손으로써 백제 왕족이다. 속일본기의 기록과도 부합한다.

-신찬성씨록.
 
이 달에 백제대정(百濟大井;쿠다라노오호위)에 ()을 조영하였다. 물부삭수옥대련(物部削守屋大連;모노노베노유게노모리야노오호무라지)을 대련(大連)으로 삼은 것이 전과 같았다. 소아마자숙녜(蘇我馬子宿禰;소가노우마코노스쿠네)를 대신(大臣)으로 삼았다.
 
-일본서기.
 
...元年夏四月 是月 宮于百濟大井
(비다쓰 천황) 즉위 원년 백제대정궁을 지었다.

-부상략기(扶桑略記).

비다츠 덴노가 즉위한 뒤에 ‘백제대정궁(百濟大井宮)’ 을 야마토(大和)의 도읍에 마련했다.

-부상략기.

舒明天皇十一年 七 秋七月 詔曰 今年造作大宮及大寺 則以百濟川側爲宮處
서명천황(죠메이 천황)이 큰 궁궐과 큰 절을 지으라 명하니 백제강 옆으로 서쪽은 궁을 짓고 동쪽은 절을 지었다.

-일본서기.

舒明天皇十二年 十月 是月 徙於百濟宮
서명천황이 백제궁으로 거처를 옮겼다.

-일본서기.

舒明天皇十三年 十月丁酉 十三年冬十月己丑朔丁酉 天皇崩干百濟宮
서명천황이 백제궁에서 붕어하셨다.

-일본서기.

舒明天皇十三年 十月丙午 丙午 殯於宮北 是謂百濟大殯
궁의 북쪽에서 백제대빈으로 장례를 치뤘다.

-일본서기.

左京諸蕃百濟林連百濟國人木貴公之後也
임씨(소가씨 곧 소가 가문. 고대 왜국[일본국] 더 정확히는 아스카 시대 당시 최고의 실권자 가문이였죠.)는 백제국 목씨에서 나온 가문이다.

-신찬성씨록.
 
  • 일본(왜)의 오우치 가문의 족보를 통해서 알 수 있는 백제와 마한의 깊은 연관성. 부제:오우치 가문에게 있어서 예로부터 한국 그것도 백제 왕실의 후손이라는 게 가장 큰 자부심이여온 것으로 보입니다.
  • 위를 잘 보시다시피, 일본(왜)이 무로마치 막부 시대~전국 시대일 때 최강의 명문가, 대영주(다이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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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사일본시문견록에 세세하게 언급된 에도 막부 시대의 일본(왜)이 조선을 굉장히 숭상해온 모습들.
  • 듣건대, 지나는 여러 고을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글씨와 시문을 마치 목마른 자가 물을 구하듯이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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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적으로 볼 때, 중국과 한국은 일본을 미개하다고 봐왔지만, 중국은 한국을 전세계에서 유일무이한 명예 중화로 봤지, 미개한 존재로 간주한 적이 없었습니다.
  • 보시다시피,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한국에게 있어서 일본이 미개했다는 언급에 대해, 중국의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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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간에서 지금이 조선 시대도 아니고 운운하는 것은 사장되야 할 언사입니다. 현대에 비해 시대적 차이가 있는 것 뿐, 오히려 원복해내야 할 시대입니다.
  • 세간에서 '지금이 조선 시대도 아니고~' 이런 언사를 자주 하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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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서도 백제가 일본(왜)에 대한 영향력이 남달랐는데요. 전세계 역사상에서도 속주(기미주, 식민지)가 본국의 국호(국명)를, 선진적 문명의 영향을 받는 국가가 선진적인 문명의 영향을 행사하는 국가의 국호(국명)를 수도(도성, 도읍), 궁궐, 궁전의 명칭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그 예를 찾아볼 수가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왜국(일본국)이 임금을 포함한 만조백관들이 백제의 복식을 입어온 것을 넘어서 본국의 국호인 백제를 수도(도성, 도읍), 궁궐, 궁전의 명칭으로 사용함은 물론, 임금의 장례식을 백제의 대빈(백제식 장례라고 보시면 됩니다.)으로 치뤄올 정도였고, 수도를 위시한 전국에 고구려, 백제, 가야, 신라 특히 백제를 본뜬 지명, 신사들이 굉장히 많아온 것을 보면, 동서고금을 통틀어서 굉장히 특이한 사례임을 잘 알 수 있겠지요. 이를 보면, 일본(왜)을 건설한 것은 고대 한국의 이주민들이지만, 그 중에서도 백제계 이주민 집단이 가장 유의미한 영향력을 끼쳐온 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유익한 참조가 되어드렸으면 합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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