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사망으로 당시 서울 편입을 준비하고 있던 광명, 과천은 없던 일이 되었다.

지금이야 김포 서울 편입을 정치권에서 이슈 팔이 정도로 들고나온 수준이지만,

당시 광명과 과천은 편입 준비를 마치고 재가만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이 경기도임에도 지역번호가 (02)인 이유다.

광명과 과천에 서울의 봄은 오지 않았다.

김포는 달랐으면 한다.

1979년 9월 은마아파트가 준공했다.

비만 오면 물이 차던 저습지를 한보그룹이 헐값에 사들였다.

“평당가 68만 원, 동·호수 지정 선착순 계약!”

강남에서 네 번째로 큰 단지에 미분양이 터졌다.

1978년 8.8 부동산종합대책 이후 부동산시장이 냉각되고 있었다.

"분양권 전매 시 양도세 100%", 복부인들이 잠시 사라졌다.

78년 12월 제2차 석유파동 이후 물가가 급등하고, 중동의 오일머니가 한국에 급속히 유입되며 투기 시장에 다시 불이 붙었다.

물가가 뛰니 현금 대신 현물을 사려는 환물심리가 발동했다.

다시 아파트로 수요가 쏠렸고, 아파트는 단 두 달 만에 완판됐다.

이 분양으로만 당시 2천억, 요즘 시가로 약 3조 원의 현찰을 손에 거머 쥐며 한보그룹은 대기업 반열에 올랐다.

은마는 31평, 34평, 화장실 2개, 중앙난방, 3-BAY로 구성된 최신식 아파트였다.

국민주택규모는 지금도 전용면적 기준 25평(85㎡)이 최대였으니, 당시로서는 큰 면적이었다.

같은 해인 1979년 12월, 강동구에는 철거민 3천 가구를 위한 아파트가 입주를 시작했다.

강동 시영아파트 1단지.

11평, 13평, 15평, 은마에 비해서 평수는 좀 작았지만,

79년 겨울, 여기 입주한 철거민들에겐 80년 봄은 어느 때보다 따뜻했다.

1979년은 지하철 2호선 1단계 건설이 준공을 앞두고 있던 시기였다.

1980년 드디어 지하철 2호선이 개통하였다.

1983년 2호선 순환 노선이 최종 완성되며 강남을 강북과 하나로 이었다.

이제 겨우 두 번째인 노선을 직선이 아닌 순환형으로 계획한 것은 강남 개발을 성공시킨 신의 한 수 중 하나였다.

강남 주민도 이제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었다.

1979년 88올림픽 유치 안건이 최종 통과됐다.

나고야 개최가 유력했으나, 1981년 결국 한국이 이겼다.

당시 일본은 쿠웨이트의 IOC 진출을 반대했다.

쿠웨이트를 깐 일본을 복수하기 위해 중동국은 한국을 찍었다.

서방은 잘나가던 일본 견제를 위해,

남미 개도국들은 처지가 비슷한 한국을 응원하며 우리 손을 들어줬다.

미국과 각을 세우는 사우디를 보며, 부산EXPO도 이리 될 줄 알았다.

6.25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었던 대한민국에

1979년은 한강의 기적을 완성한 올림픽의 첫 단추였다.

올림픽 개최 결정은 강남 개발과 아파트 시대로의 전환을 부채질 했다.

김포공항에서 잠실까지 강변도로에서 보이는 판자촌이 철거되고 아파트가 들어섰다.

가난한 대한민국은 외국인이 봐야할 모습이 아니었다.

쫓겨난 사람들은 '서울시 철거민 협의회'를 만들었고, 이후 지금의 전국철거민 연합회(전철연)가 되었다.

1966년 김현옥 서울시장은 취임과 동시에 '서울도시 기본 계획안'을 청와대에 보고 했다.

이것이 강남 개발, 아파트 시대의 출발이다.

20년 뒤 1987년 서울 인구를 800만으로 추정하고, 이때 이미 100만 평의 올림픽 부지를 잠실로 예정해 두었다.

국민소득 고작 80불 시대, 조국의 역군들은 한강의 기적을 미리 꿈꾸고 있었다.

1979년, 강북에 있던 수도공고가 개포동에 자리를 잡았다.

강북에서 이동한 18개 학교 중 세 번 째였다.

미안먀는 '양곤'의 남쪽 '달라'지역에 신도시 건립을 위해 강남개발을 참고하는데, 학교 이전을 똑같이 따라 하는 중이다.

미얀마 군부정권은 반정부 시위하는 학생들을 멀리 쫓아 보내고 싶었다.

명문고의 강남 이전은 강남 개발을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민주화 학생 시위의 힘을 빼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그래서 서울대가 대학로에서 뜬금포 관악으로 쫓겨났다.

60년대 사람들은 서울로 몰려들었다.

경제개발 본격화로 노동 집약적 제조업이 농촌 인구를 흡수하고 있었다.

해마다 10%씩 증가하는 서울 인구는 5년이면 두 배씩 증가했다.

집이 없었다.

20만 호의 무허가 판자촌, 도시 하부구조는 파탄 지경이었다.

당시 서울 시장 윤치영은 "인구 집중을 방지하기 위해 도시계획을 하지 않는 것이다."라는 망언을 했다.

1962년 국가재건 최고회의 사무실, 화신 백화점 사장 박흥식이 도면 하나를 들고 박정희를 찾아왔다.

대한민국 최초의 백화점, 명동에 있는 지금의 신세계 백화점 본점이 과거 화신 백화점이다.

그가 내민 도면은 30만 명 이상을 수용할 '남서울 계획안'이었다.

박흥식은 서울시 부시장에게 뺀찌를 먹고 돌아갔지만, 박정희는 그때 처음 강남 개발의 인사이트를 얻었다.

1966∼80년의 15년간 서울에는 정확히 489만 3500명의 인구가 늘었다.

하루 평균 894명의 인구가 15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늘어난 셈이다.

매일 22동의 주택, 시내버스 18대, 1340㎏의 쓰레기 처리가 필요했다.

강남 개발을 추진한 1966년 이후부터 제4공화국이 끝난 1979년까지 서울시 간부들은 월화수목금금금이었다.

토지 가격은 1975년부터 건설교통부가, 주택 가격은 1987년부터 국민은행이 통계를 관리하였다.

1978년 당시 토지 가격은 1년 사이 전국 평균 48%나 떡상 하였다.

서울은 135.7% 폭등했다.

이미 반포주공 1단지와 압구정 현대아파트 투기 광풍이 문제가 되고 있었다.

1978년 8월 8일, 정부는 부동산 종합 대책을 내 놨다.

이름은 ‘부동산 투기억제 및 지가 안정을 위한 종합 대책'

사실상 최초의 부동산 종합 대책이었다.

대통령 스스로 '혁명적 조치'라 할 만큼 규제는 강력했다.

8·8 대책이 첫 부동산 정책은 아니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과 강남 개발을 앞두고 땅값이 크게 오른 1967년

부동산 투기억제 특별 조치법이 나온 적이 있다.

부동산을 경제 운용의 핵심 변수로 보고 관련 법규까지 한꺼번에 손본 것은 ‘8·8 대책’이 원조다.

경제 당국은 1976년 말부터 새로운 현상에 골머리를 앓았다.

1977년에는 수출 100억 달러, 국민 1인당 소득 1,000달러를 돌파했다.

중동 건설 붐을 타고 오일 달러도 쏟아져 들어왔다.

노가다 김 씨가 벌어들인 오일달러 유입으로 국내 통화량이 증가하고 있었다.

중화학공업 육성을 위한 정부의 자금 지원도 시중 통화량 증가를 부추겼다.

반면 물자는 여전히 부족했다.

돈은 많고 물자는 적은 수급 불균형은 물가 급등으로 이어졌다.

물가가 뛰면 시중 자금은 금융권을 이탈해 부동산 같은 실물로 흐른다.

돈 들고 있어봐야 가치 없어지니, 현물로 바꾸려는 '환물심리'가 발동했다.

시중 부동자금은 모두 부동산 시장에 몰렸다.

서울의 자가 주택보유율이 45%이던 시절, 부동산 중에서도 아파트 가격이 치솟았다.

1976년까지 평당 40만 원이던 아파트 분양가격이 1년 사이 60만 원으로 뛰었다.

비싸진 분양가에도 아파트를 당첨만 받으면 바로 프리미엄이 붙었다.

전 국민이 투기판에 뛰어들었다.

열심히 일하는 근로자의 의욕을 꺾었다.

주택 가격을 상승은 인플레 유발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였다.

기업도 비싼 토지 가격 때문에 대외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었다.

부동산 투기가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곳은 없었다.

정치적으로도 12월로 예정된 11대 총선을 앞두고 민심을 달랠 조치가 필요한 시기였다.

1978년 마침 압구정 아파트 특혜분양 등으로 부정부패에 대한 반감이 널리 퍼져 있었다.

정부는 최초의 종합부동산 대책에 가능한 한 많은 내용을 넣었다.

토지 거래 허가·신고제 도입, 기준지가 고시, 부동산 거래용 인감증명제도 시행, 양도세 과세 강화 등이 담겼다.

공인중개사 제도 도입과 토지개발공사 설립도 이때 방향이 정해졌다.

1979년, 드디어 폭등세가 꺾였다.

특히 미등기 전매에 대한 양도세 100% 부과 방안이 시장에서 먹혔다.

그런데 최초의 종합 대책에서 구멍이 생기기 시작했다.

토지 거래 전면 허가제는 건설부의 반대로 신고제로 바뀌었고,

토지매매계약은 내무부가 제동을 걸어 변호사 대신 공인중개사 제도 도입으로 방향을 틀었다.

양도세도 갈수록 완화돼 누더기가 됐다.

당시 실무를 맡았던 공무원은 '투기꾼들과의 전쟁보다 내부 반대자들과의 전쟁'이 더 힘들었다.

밤낮 없는 수고가 허탈할 뿐이었다.

만병의 근원인 부동산 투기는 정부 정책을 우회하며 주기적으로 일어났다.

정책은 성냥불, 수급은 땔감, 유동성(통화량)은 기름이다.

정책은 반짝하고 불타오를 때만 효과를 볼 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땔감과 기름을 걷어내야 불이 꺼진다.

수급 불균형, 통화량 증가 같은 원인이 해결되기 전까지 이 문제는 치료가 안된다.

시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 간단한 이치는 변함이 없다.

1978년 역대 가장 강력한 종합 대책이 나왔음에도, 점차 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갔다.

1981년 주택경기 부양책을 쓰며 아파트 가격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냉온탕을 오가며 물 온도를 조절하는 정부를 보며, 

우리는 부동산대책의 한계와 정책의 유통기한이 존재함을이해했다.

1979년 아파트, 잡힐 줄만 알았던 투기 근절의 봄은 결국 오지 않았다.

적들은 모두 내부에 있었다.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