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를 아무 생각 없이 보다가 삐삐 이야기가 나오길래... 너무 연식이 나오는거 같아서 좀 부끄럽긴 하지만 당시의 추억이 생각이 나네요.

90년대 말이나 00년대 이후 출생자들은 아예 본적도 없는 물건인 삐삐... 그저 누군가가 나에게 전화번호를 남기며 호출을 하는 용도였지만

당시로서는 누군가가 나에게 호출을 하고 음성 메시지를 남긴다는 개념 자체를 처음 도입한 물건이었고,

무엇보다 당시에 처음 있었던 개념인 '휴대하는 보급형 통신기기' 라는 측면에서 지금은 휴대폰과 같은 위치의 기기였죠.

그리고 이런 기종에 제일 민감한건 역시 청소년들이었습니다. 자연히 이런 기기들의 서열을 매기는 것도 청소년들이었죠.

당시 국내외 여러가지의 브랜드에서 삐삐를 출시했지만, 너무나 당연하게도 최강자는 바로 이 제품이었습니다.

당시 전 세계 무선 통신 사업자 부동의 1위였던 모토로라, 그 중에서도 최강의 삐삐였던 브라보 플러스입니다.

당시의 모토로라는 '휴대용 통신기기'에서 지금의 애플보다 더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즉, 이 브라보 플러스는 지금으로 따지면 아이폰의 최상위 기종이나 마찬가지였죠.

사실 삐삐는 기능이 너무나 단순하기 때문에 모든 브랜드가 기능상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만, 

이 브라보 플러스의 가장 큰 특징은 매우 선명한 연두색의 액정 백라이트 였습니다.

당시 다른 브랜드의 삐삐의 백라이트가 액정 한쪽 구석에 작은 전구를 박아놓은 형태로 매우 조악했던 반면

브라보 플러스의 백라이트는 매우 깔끔하고 빛이 났죠.

이게 이 삐삐의 가치를 가장 높여준 원동력이었습니다.

중년간지에 어울리는 투박한 디자인이었지만, 이것이 남녀노소 모두에게 어필하는 디자인이 되었죠.

그렇게 모토로라 1인 왕조의 시대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국내의 회사에서 새로운 삐삐를 출시합니다. 그것도 '삼성물산'에서 말이죠.

(지금 생각하면 삼성물산은 그저 판매자일 뿐.. 생산을 어디에서 했는지는 모르겠네요..)

어쨌든 삼성의 삐삐가 처음 나온겁니다! 그때까지는 삼성은 통신기기와 전혀 관계없는 회사였거든요. (정말입니다)

X-ing이라고 이름 붙은 이 삐삐는 삐삐계의 일대 혁명을 가져옵니다.

일단 디자인 부터가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마치 무선조종기 처럼 한손 손잡이가 달린 모양의 특이한 디자인에 고급스러운 외형 재질

(그전까지의 삐삐는 거의 100% 직사각형이었습니다)

블랙, 그레이, 화이트의 3가지 색상

그리고 가장 중요한거.. 삐삐의 간지를 좌우하는 백라이트가 액정 전체에 파란색으로 들어오는 매우 '혁신적인' 제품이었죠.

백라이트가 모토로라보다 더 예뻤던 최초의 제품이었습니다.

거기에 삐삐 최초로 비프음이 아니라 '멜로디'가 들립니다. 이전까지의 삐삐는 전부 비프음이었습니다.

이 기기가 최초로 삐삐계에 멜로디를 들여왔죠.

하지만 이 기기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무려 1994년에 이런 기능을 내어놓습니다.

무려 X-ing과 X-ing box라는 기기를 가전 제품이나 자동차에 연결하면 바깥에서 전화하는 것만으로 원격제어가 가능해집니다.

현재의 유비쿼터스의 조상격이라고 보면 되는 기기죠. 스마트폰도, 와이파이도 없던 시기에 매우 원시적인 방법으로 원격제어를 가능하게 만든 혁명적인 기기였습니다.

물론 이 기기를 열광적으로 구매한 층은 청소년이었기 때문이 이 기능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고 해도 무방합니다만...

아무튼 갑자기 이 기기가 혜성처럼 등장하게 되고, 당시 모토로라만 넘을수 있었던 10만원대의 가격을 함께 넘어버리는 유이한 기기가 됩니다.

(10만원이면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들리지만, 당시의 10만원은 정말 큰돈이었죠. 저의 몇달치 용돈이었으니....)

지금으로 따지면 이 기기야 말로 현재의 갤럭시와 비견할수 있을만한 존재였죠.

갑자기 생각이 나네요 ㅜㅜ... 저희 아버지가 어느날 갑자기 이걸 사오셔서 제가 너무 좋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가난한 집에서 이런걸 사주신걸 보면 정말... 뭐라 말해야될지 모를 정도로 감사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네요.

이걸 산 후 다음날 학교 친구들에게 허리춤에 차고 무지하게 자랑했던게 생각납니다. 제가 반에서 첫번째로 샀거든요..

뭔놈의 틀X의 추억팔이질이야?? 라며 기분 나빠하시는 분들께는 죄송한 말씀을 드립니다.

그냥 옛날(?) 에는 이런것도 있었어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