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기구의 종류는 정말 다양하지만, 잉크의 성질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유성펜, 중성펜, 수성펜은 각각 잉크의 점도와 구성 성분에 따라 또렷한 특성을 지닙니다.
수성펜에 사용되는 잉크는 물을 주성분으로 한 저점도 액체입니다.
반면, 중성펜은 수성 잉크에 소량의 잔탄검(xanthan gum)을 첨가해 점도를 높인 중간 점도의 잉크를 사용합니다.
유성펜은 이보다 훨씬 점성이 높은 잉크를 사용하며, 잔탄검이 더 많이 혼합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잉크의 점도 차이는 필기감, 마르는 속도, 번짐 정도, 그리고 종이와의 궁합 등 다양한 요소에 영향을 줍니다.
수성 잉크는 점성이 낮아 종이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특성이 있습니다. 덕분에 색 표현력이 뛰어나 예술적이거나 감성적인 필기에 적합합니다. 특히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다양한 색상과 개성 있는 잉크들이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교토잉크 누레바이로는 가장 우아한 검은색으로 손꼽히며, 세일러 금목서는 불타는 듯한 황금빛을 띱니다. 디아민 작가의 피는 고급스러운 적갈색을 지녔고, 세일러 유라메쿠 이테조라(겨울 하늘)는 필기 후 시간이 지나면 색이 변하는 독특한 테 분리 효과를 보여줍니다.
유성펜과 수성펜의 가장 큰 차이는 필감에 있습니다. 수성펜의 잉크가 종이에 저절로 스며든다면, 유성펜의 잉크는 힘주어 종이에 '발라야' 하니까요.
<유성펜>
유성펜의 대표격인 볼펜은 다양한 종이에서 잘 써지며 번짐이 적고, 오래 사용할 수 있어 실용성이 뛰어납니다. 이 덕분에 볼펜은 등장 이후 수성펜을 빠르게 대체하며 대중화되었습니다. 하지만 점도가 높아 눌러 써야 하므로 손목에 부담을 줄 수 있으며, 잉크가 뭉치거나 흐르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단점도 있습니다. 가격이 비교적 높고, 잉크 소비량이 많아 자주 리필해야 하며, 관리가 까다롭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만년필은 전통과 감성적인 필기를 선호하는 이들 사이에서 꾸준히 사랑받고 있습니다. 오히려 만년필에 익숙해진 이들은 볼펜을 사용할 때 필감이 나쁘고 손에 무리가 간다며 불편함을 호소하기도 합니다.
<수성 볼펜>
수성 볼펜은 유성 볼펜보다 필기감이 부드럽고 가볍습니다. 색감도 진하고 선명하여 시각적인 만족도가 높습니다. 다만, 만년필처럼 특유의 필기감은 부족하며, 중성펜과 비교하면 존재감이 약하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고급 만년필 브랜드들이 동일한 디자인의 수성 볼펜도 함께 출시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이는 실용성보다는 디자인과 브랜드 가치, 품격 있는 외형을 중시하는 소비자들을 겨냥한 전략입니다. 실제로 국회의원이나 고위 인사들이 회의석상에서 수성 볼펜을 사용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유성펜과 중성펜, 그리고 수성펜의 차이는 잉크의 물성에서 출발하지만, 그로 인해 파생되는 사용감, 용도, 그리고 감성적 요소는 전혀 다릅니다.
유성 볼펜에 익숙하다면 제브라 사라사나 유니볼에어와 같은 중성펜도 한 번 사용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힘주어 쓰지 않아도 부드럽게 나오는 진한 글씨가 새로울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