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옳고 타당한 말이지만, 이 말에 사람들은 공감보다 거부감을 더 크게 느낀다.
실패 자체가 두려울뿐더러, 실패를 딛고 일어설 확률도 높지 않기 때문이다.
매주 어딘가에서 로또 당첨자가 나오지만, 내가 주인공이 될 확률은 희박하다.
실패를 견뎌내는 것조차 힘든데, 그걸 계기로 성과를 도출하는 상황은 요원한 일처럼 느껴지기 마련이다.
대다수 사람에게 실패를 통해 성공을 거둘 확률은 로또 당첨 확률처럼 막연하고 멀게만 느껴진다.
그렇다면 실패란 무엇인가, 어떻게 이용해야 성공과 인과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이 책은 그런 그 답을 찾기 위해 실패를 집중 탐구한다.
공동 저자인 이광형 카이스트(KAIST) 총장, 조성호 카이스트 실패연구소장, 안혜정 실패연구소 연구조교수는 실패를 정의 내리고, 실패에 대한 대중 인식을 분석해 우리 사회를 진단한다.
저자들은 한국의 국가 연구개발(R&D) 과제 성공률이 99% 달하는 현실에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애초에 성공할 수밖에 없는 목표만 설정했다는 게 그의 지적. "국가의 미래 성장 동력을 책임지는 R&D야말로 혁신적인 도전이 가장 필요한 분야인데도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혁신의 기회를 제한하고 있다"고 우려한다.
이는 국내 대학 최초로 카이스트에 실패연구소가 설립된 이유다.
실패연구소 존재 목적은 크게 세 가지다.
실패를 드러내고 공유함으로써 실패에 대한 인식 전환을 이뤄내고, 실패 경험을 사회적 자산으로 전환하며, 사회 구조적 차원에서 해법을 모색한다.
카이스트 재학생이 느끼는 실패감은 의외로 허들이 낮다.
학업 성취는 뛰어나지만 일상의 작은 어려움에 과도하게 좌절감을 느낀다.
한 카이스트 학생은 "카이스트 학생 대다수는 학생부 종합 전형으로 입학하며, 이는 고등학교 3년 동안 성적과 관련된 활동에서 단 한 번이라도 무언가를 망쳐본 적이 없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실패 경험이 적은 만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크고 회복탄력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외국 명문대생들도 마찬가지. 2017 뉴욕타임스는 이를 ‘실패결핍’이라 진단했다.
이는 실패에 대한 내성이 없어 스스로 해결하지도, 도움을 요청하지도 못하는 상황을 지칭한다.
실패연구소는 실패를 정의 내리는 과정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한다.
적잖은 사람이 ‘실패한 느낌’을 ‘진짜 실패’와 혼동하고 있다는 것. 카이스트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패의 순간을 사진에 담아 달라는 ‘포토보이스’ 프로젝트를 진행한 결과 많은 학생이 제출 분량을 채우지 못했고, 오히려 실패의 기준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이게 과연 실패라고 할 만큼 큰일인가 고민하게 됐어요"라는 답변이 많았다.
실패 기준이 지극히 주관적이라는 것도 주목할 점이다.
포토보이스 결과 애초에 성공이었던 결과가 타인과의 비교로 인해 실패로 변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한 학생은 대전의 유명 맛집에 가서 솥밥을 맛있게 먹고 "오늘 메뉴 대성공인데"라고 생각했으나, 친구의 솥밥을 먹은 순간 실패감을 맛봤다고 토로했다.
절대 기준으로 자신의 솥밥맛은 합격점이었지만, 상대 기준으로 봤을 때 친구의 솥밥이 더 맛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저자는 "성공과 실패의 경계는 생각보다 모호하고, 우리의 인식과 해석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며 "실패를 할지 아닐지보다, 지나간 경험을 어떻게 이해할지 (…) 어떤 의미를 발견했는지를 더 중요하게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다"고 설명했다.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라지만 모든 실패가 성공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다슌 왕 교수가 연구비 신청 데이터(1985~2015·14만건), 스타트업 투자 데이터(1970~2016·5만8111개), 테러 조직의 공격 데이터(1970~2017·3000여개 테러조직)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연구자의 26%, 창업자의 87%, 테러리스트의 42%는 지속적인 시도에도 뜻을 이루지 못했다.
다만 성공한 케이스에선 일정한 패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실패를 거듭할수록 실패 사이의 간격이 줄어들었고, 실패를 거듭할수록 적게나마 성과를 도출했다.
반면 실패한 케이스는 실패와 실패 사이 간격에 큰 변화가 없었고, 실패를 통한 성과도 미미했다.
저자는 그 차이의 원인을 내적동기 유무에서 찾는다.
내적동기를 따르면 활동 자체에서 의미를 찾고 즐거움을 느끼지만, 외적 동기를 따르면 외부 보상과 인정에 치우치기 때문에 인정받기 더 쉬운 다른 과제로 목표를 바꾸기 쉽다고 지적한다.
수년의 연구 끝에 실패연구소가 발견한 성공 핵심 원칙은 명확했다.
고유한 목표와 비전을 갖고 도전하는 것. 그런 경우 실패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실패에서 느낀 점을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타인과 공유할 수 있도록 재구성한 후, 심리적으로 안전한 환경에서 나누는 과정을 통해 끝내 성공을 쟁취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실패담을 편하게 나눌 수 있는 안전한 환경 조성이다.
외부 평가에 흔들리지 않는 목표와 비전을 찾는 것은 개인의 노력으로 일정 부분 가능한 일이지만, 실패를 공유할 수 있는 안전한 환경 마련은 사회 역할이 필수적이다.
실패연구소의 도전은 우리 사회에 묵직한 과제를 제시한다.
실패 빼앗는 사회 | 안혜정·조성호·이광형 지음 | 위즈덤하우스 | 304쪽 | 1만8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