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2심 판결은 ‘사진과 조작’이라는 주제로 또다른 파장을 낳았다.
검찰이 증거로 제시한 사진을 두고 재판부가 조작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사진은 원본 그대로가 아니라 특정 부분을 확대한 것이었다.
여권에서는 즉각적인 반발이 튀어나왔다.
"주정차 위반 과태료 통지서도 사진을 확대해서 보내는데, 그렇다면 조작된 사진이니 과태료를 내지 않아도 되나" "기사를 쓸 때 특정인을 클로즈업한 사진은 쓰지 말라. 사진 조작이 될 수 있다"는 식의 비판이었다.
알쏭달쏭한 법리와 정치적 수사를 제외하고, 이번 논란은 생각거리를 또 하나 남겼다.
명확성과 선명성을 위한 개입과 의도적 왜곡 사이의 경계는 어디인가. 이는 단순화하면, 우리가 ‘사실(fact)’이라고 부르는 것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다.
책 ‘사실의 수명(The Lifespan of a Fact)’은 그 질문에 대한 응답이다.
책의 구성이 독특하다.
작가 존 다가타와 잡지 ‘빌리버’의 팩트체커 짐 핑걸이 실제로 나눈 논쟁과 대화를 그대로 담고 있다.
발단은 어떤 사건과 그 사건을 다룬 다가타의 원고 투고다.
2002년 7월13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한 카지노 호텔에서 열여섯 소년이 투신해 숨졌다.
논픽션 작가인 다가타는 이 사건에 관한 심층 탐구형 에세이를 쓴다.
그러나 첫 매체로부터 투고를 거절당한다.
"글에 사실 오류가 손쓸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게 이유였다.
다가타의 원고를 받아준 곳은 잡지 ‘빌리버’였다.
단, 조건이 있었다.
‘빌리버 내부의 철저한 팩트체크를 거칠 것’.
책에 담긴 논쟁은 때로는 사소해 보이는 디테일에 집중된다.
라스베이거스의 신호등 개수, 자살 현장에서의 거리, 특정 건물의 색상 등. 다가타는 그러한 ‘사소한’ 사실들을 변경하는 것이 에세이의 본질적 진실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핑글에게 이러한 각각의 ‘작은 거짓말’들은 전체 이야기의 신뢰성을 무너뜨리는 균열이다.
‘이 부분이 사실이냐’고 집요하게 캐묻는 편집부 측과, ‘진실은 시시한 팩트가 아니라 그 이면에 있다’는 작가의 입장은 타협 불가능한 수준으로 치닫는다.
책은 그 ‘전쟁’의 기록인 셈이다.
작가와 팩트체커의 숨 막히는, 때로는 쓴웃음과 비웃음이 나오는 극한대결은 명쾌한 결론을 내지는 못한다.
대결은 마무리되지 않고, 결국 또다른 질문으로 끝난다.
진실이란 것이 결국은 누구의 판단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며, 결국 독자 자신에게 있을 수밖에 없음을 상기시켜주는 셈이다.
가짜뉴스가 범람하는 시대엔 ‘비판적 사고’가 필수적이라는 암시처럼 읽힌다.
이 책이 평단의 호평을 받은 공통점은 ‘독자로 하여금 생각을 하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2012년 출간 당시에도 화제였던 이 책은 현재의 ‘가짜뉴스’ 시대에 더욱 의미가 깊어졌다.
콘텐츠의 홍수, 소셜미디어의 발달 속에서 현대인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정보에 노출되지만, 진실을 찾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사실의 수명 / 존 다가타·짐 핑걸 / 서정아 옮김 / 글항아리 / 2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