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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는 매년 '30년 경과 비밀해제 외교문서'를 공개한다. <더팩트>는 1977년 11월 14일 북한의 석유 탐사 동향이 파악됐던 당시 상황을 재구성했다. 정부는 각 재외공관을 동원해 관련 첩보 수집에 나섰다. /임영무 기자 |
[더팩트 | 김정수 기자] 1977년 11월 14일 외무부(외교부)는 주노르웨이 대사관으로부터 뜻밖의 전문을 수신했다. 노르웨이 소재 GECO라는 회사가 북한과 '석유 탐사를 위한 지질조사'에 합의했다는 내용이었다. 주노르웨이 대사관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GECO는 본격적인 석유 탐사 시행에 앞서 북한에 △지진대 평균 길이 △소요 항행 형태 △수심 등 구체적인 내용을 요청한 상태였다.
그로부터 약 2주 뒤, 외무부는 주홍콩 총영사관으로부터 또 다른 첩보를 전달받았다. 주홍콩 총영사관은 "약 3주 전 일본 사업가가 베트남 하노이를 방문했는데, 그곳에서 BOEC(British Oil Exploration Counsulting) 상사단을 만났다고 했다"며 "BOEC 관계자들은 하노이 일정을 마치고 북한 평양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주홍콩 총영사관은 해당 정보를 제공한 정보원이 '상당히 신뢰할 만한 인물'이라는 점도 덧붙였다.
북한의 석유 탐사 정황이 드러나자 외무부는 즉시 미국, 일본,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스웨덴, 덴마크, 싱가포르, 캐나다 공관장들에게 △노르웨이 GECO △영국 BOEC 상사 등과 관련한 정보 수집에 나서라고 지시했다.
그러는 사이 홍콩 언론에서 '북한 국영공업기술공사와 영국계 석유 탐사 상사의 싱가포르 주재 자회사가 북한 석유 개발에 잠정 협정을 체결했다'는 보도가 흘러나왔다. 최종 협정 시한은 1978년 초로 전망된다는 구체적인 시기까지 전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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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정부는 북한의 석유 개발 착수를 해상 경계 지역 변동 조치와 연관 지어 판단했다. 또 정부가 파악한 북한의 석유 탐사 지점은 중국 보하이해에서 시작되는 발해 연안 일대였다. /외교부 제공 |
이때 정부 관계자들은 한 가지 사건을 떠올렸다. 약 3~4개월 전 북한이 해상 경계 지역을 일방적으로 발표한 일이었다. 당시 북한은 영해 기산선으로부터 200해리를 경제수역으로 설정했다. 이어 해상 군사경계선을 동해에선 기산선으로부터 50해리, 서해에선 경제수역 경계선까지 설정했다. 정부는 북한의 이같은 움직이 석유 탐사를 염두에 둔 조치라고 의심했다. 정부가 파악한 북한의 석유 탐사 지점은 북위 38도 30분, 동경 120도에 위치한 중국 보하이해에서 시작되는 발해 연안 일대였다.
얼마 뒤 외무부는 주싱가포르 대사관으로부터 다소 정제된 보고를 전달받았다. 내용에 따르면 북한과 석유 탐사 협약을 체결한 회사는 기존에 알려진 BOEC가 아니라 영국 ECL(Exporation Consultants of London)의 싱가포르 소재 자회사 AEC(Asia Exploration Consultant)였다. AEC는 북한 국영공업기술공사와 '북한 연안 석유 탐사권에 관한 잠정 협정'을 체결했으며, 완전 협정 체결은 1978년 초였다. 당시 AEC는 하청 계약자를 찾고 있었는데 조건은 한국과 미국 외 국적 보유자였다.
외무부는 북한과 계약한 AEC의 본사 ECL이 영국에 있다는 점을 감안, 주영 대사관에 관련 정보를 파악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주영 대사관은 해당 회사의 재무 정보와 회사 관계자들을 탐문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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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 대사관은 북한과 협약을 체결한 AEC와 본사 ECL을 정상적인 회사로 보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정부는 영국 외무성과 접촉해 혹시 모를 가능성에 대비하고자 했지만, 영국 외무성은 "북한의 석유 개발 문제와 관련해 파악된 사항은 전혀 없다"고 밝혔다. /외교부 제공 |
하지만 회사의 실체에 접근할수록 북한의 석유 탐사가 실제로 이뤄질지에 대한 의문이 커졌다. 우선 북한과 협약을 체결한 AEC와 본사 ECL을 정상적인 회사로 보기 어려웠다. 2년간 회사 활동 기록이 전무했을뿐더러 회계 감사 기록조차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북한과의 협의 관련 문서에는 서명 일자 자체가 없었다.
무엇보다 정부가 입수한 AEC와 ECL 간의 텔렉스(Telex) 전문에는 북한의 정식 명칭이 기록돼 있었다. 주영 대사관은 "전문 속에 북괴의 정식 호칭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정치적 조작의 여지가 있는 의심을 일부 내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당시 영국은 자국 소재 회사의 북한 진출 여부를 파악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만큼 회사나 북한 입장에선 기밀을 요할 만한 사안이었지만 북한의 정식 명칭이 그대로 사용된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라는 판단이었다.
정부는 영국 외무성에 접촉해 혹시나 모를 가능성에 대해 대비하고자 했지만, 영국 외무성은 "북한의 석유 개발 문제와 관련해 파악된 사항은 전혀 없다"고 밝혔다. 이를 끝으로 외무부 전문이 더 이상 생산되지 않은 점을 미뤄보면 북한의 석유 탐사 시도는 실패로 돌아간 것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된 노르웨이 GECO 상사에 대한 전문도 추가로 확인되지 않았다. 북한은 2000년대 이후에도 외국 기업과의 석유 탐사 시도를 이어갔지만, 현재까지 이렇다 할 성과는 내지 못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js8814@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