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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임위원장 배분을 놓고 여야의 힘겨루기가 계속되고 있다. 국민의힘은 법제사법위원장을 야당 몫으로 돌려줘야 한다고 압박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은 단호하게 거부하는 분위기다. /남윤호 기자 |
[더팩트ㅣ국회=김세정 기자] 상임위원장 배분을 놓고 여야의 힘겨루기가 계속되고 있다. 국민의힘은 법제사법위원장을 야당 몫으로 돌려줘야 한다고 압박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은 단호하게 거부하는 분위기다. 민주당은 수적으로는 어떤 사안도 단독 처리할 수 있지만, 협치를 완전히 외면하긴 어렵다는 정치적 부담도 엿보인다.
19일 정치권에 따르면 여야는 상임위원장 문제로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이날 오후 문진석 민주당 원내운영수석부대표와 유상범 국민의힘 원내운영수석부대표가 만나 상임위원장 배분 문제를 논의했지만, 입장차만 재확인한 채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다.
유 원내수석은 회동 직후 "여당 입장이 어제에서 한발도 변화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오는 23일 다시 만나겠다고 밝혔다. 반면 문 원내수석은 "원 구성 협상은 1년 전 1기 원내지도부에서 이뤄져서 앞으로 1년간 지켜나가자는 취지로 잘 말씀드렸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법사위원장을 야당 몫으로 돌려줘야 한다며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국민의힘이 법사위원장을 야당에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배경에는 법사위원장이 가진 막강한 권한 때문이다. 국회법 제86조 제1항에 따르면 신속처리안건을 제외한 모든 법안은 본회의 상정에 앞서 법제사법위원회의 체계·자구 심사를 거쳐야 한다. 사실상 입법의 최종 관문인 만큼, 법사위원장이 심사 일정을 조율하거나 보류하면 실질적인 거부권 행사도 가능하다. 이 때문에 이 자리를 둘러싼 여야 간 신경전이 반복됐다.
국민의힘은 그간 국회에서 제1당이 국회의장, 제2당이 법사위원장을 맡는 관행이 형성돼 있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21대 국회 전반기 당시 과반 의석을 차지한 민주당이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을 모두 가져가며 기존 질서가 무너졌고, 이후 협치가 사실상 실종됐다는 게 국민의힘의 시각이다.
22대 국회에서도 같은 구도가 반복됐다. 민주당이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을 차지했고,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독주라고 맞섰다. 윤석열 정부 시절에는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으로 일정 부분 입법 독주에 제동을 걸 수 있었지만,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에는 그마저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위기감이 깔려 있다. 이에 따라 국민의힘은 법사위원장직이 입법 균형을 위한 최소한의 견제 장치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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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은 그간 국회에서 제1당이 국회의장, 제2당이 법사위원장을 맡는 관행이 형성돼 있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21대 국회 전반기 당시 과반 의석을 차지한 민주당이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을 모두 가져가며 기존 질서가 무너졌고, 이후 협치가 사실상 실종됐다는 게 국민의힘의 시각이다. 사진은 22대 첫 법사위원장을 지낸 정청래 의원. /임영무 기자 |
국민의힘 소속의 김석기 외교통일위원장과 성일종 국방위원장, 신성범 정보위원장은 전날 기자회견을 열고 "법사위원장을 국민의힘이 가져와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의 대원칙을 바로 세우는 데 협조한다면 여당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저희가 맡은 외통위원장, 국방위원장, 정보위원장을 넘길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유상범 원내수석도 "국회 내 견제와 균형을 제대로 이루기 위해 필요한 부분이기에 저희가 요구한다"라고 강조했다.
반면 민주당은 '줄 건 없다'는 입장을 굳힌 상태다. 167석의 과반 의석을 확보하고 있는 만큼 총리 인준부터 주요 법안 처리까지 단독으로 밀어붙일 수 있는 구조이며 야당 없이도 상임위 구성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독자 노선을 고수하고 있다.
이러한 기조에는 당내 강경 여론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법사위원장직을 국민의힘에 넘기는 데 대한 거부감은 강성 당원들 사이에서 여전히 뿌리 깊다. 당 지도부도 온라인을 통해 분출되는 당심을 무시할 수 없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2021년 21대 국회 당시 윤호중 원내대표가 법사위원장 양보를 시사했다가 당 안팎으로 거센 비판에 직면했던 경험이 지도부의 판단에 뚜렷한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이 경험은 이후 민주당이 법사위원장 문제를 협상의 양보 카드로 삼는 데 극도로 신중해지는 계기가 됐다.
또 법사위원장을 제2당에 배분해온 것을 관례로 보긴 어렵다는 입장이다. 김영삼 정부 시절까지만 해도 원내 1당이자 여당이었던 신한국당이 법사위원장을 맡는 경우가 일반적이었고, 국민의 정부 이후 야당이 견제를 명분으로 해당 자리를 요구하는 흐름이 등장해 참여정부 때까지 이어졌다고 본다.
당 한 관계자는 "원 구성은 이미 돼있고, 상임위원장까지 (1년 전에) 합의가 이미 다 됐는데 깰 수 있겠나"라며 "여야가 서로 간에 신뢰가 있어야 가능한 얘기고, 지금 상황에서는 그냥 일방적 주장인 것"이라고 말했다.
여야는 추경안 처리를 위해서라도 조속한 원 구성 마무리에 대한 공감대는 있지만, 핵심 쟁점인 법사위원장을 둘러싼 입장 차가 좁혀지지 않으면서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정치권 일각에선 민주당이 독자 구성을 강행할 경우, 명분 싸움에서 일정 부분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야당 협조 없이도 일정 수준의 입법 성과를 내면 여대야소 구조 속에서 정국 주도권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이런 단독 처리가 반복돼 일방통행식 운영이 장기화될 경우, 정국 운영에 대한 부담이 오히려 여당에 부메랑처럼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국민의힘도 법사위원장 외 상임위 조정에는 비교적 유연한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무기력한 야당'이라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