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자율 제조는 더 이상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글로벌 기업들의 생산 현장에선 이미 AI가 인간을 대신해 조용히, 쉼 없이 공정을 이끌고 있다.
BMW, 폭스콘, 테슬라, 비야디(BYD) 등 글로벌 기업들은 조립·검사·유지보수까지 AI가 전담하는 자율 제조 시스템을 도입해 무인화와 고정밀화를 실현하고 있다.
단순 자동화를 넘어 AI가 생산을 판단하고 주도하는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린 것이다.
독일 BMW 그룹은 지난해 9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스파턴버그 공장에 미국 로봇 스타트업 피규어(Figure)의 최신 휴머노이드 로봇(Figure 02)을 생산 공정에 투입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BMW는 "미래는 오늘부터 시작된다"는 구호와 함께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알렸다.
Figure 02는 키 170cm, 몸무게 70kg의 인간형 체형을 갖추고 있으며, 최대 20kg의 부품을 양손으로 정밀하게 다룰 수 있다.
시트 금속 부품을 고정 장치에 배치하거나 복잡한 부품을 손으로 조립하는 고난도 작업을 자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 BMW의 설명이다.
BMW는 이 로봇이 조립공정에서 인간과 협업하거나, 반복적이고 인체에 부담을 주는 작업을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밀란 네델코비치 BMW AG 생산담당 이사는 "초기 시범운영을 통해 휴머노이드 로봇의 생산 현장 적용 가능성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며 "개발부터 산업화 단계까지 이 기술을 함께 발전시켜 나가고 싶다"고 밝혔다.
독일 작센주에 위치한 유제품 가공업체 작센밀히 레퍼스도르프(Sachsenmilch Leppersdorf GmbH)는 매일 470만 리터의 생우유를 처리하는 유럽 최대 규모 유가공 공장 중 하나다.
365일 24시간 가동되는 이 공장은 사실상 100%에 가까운 가동률을 유지해야 한다.
최근 작센밀히는 지멘스와 협력해 AI 기반 예측 유지보수 시스템 '센스아이(Senseye)'를 도입했다.
이 시스템은 설비 데이터를 분석해 고장 징후를 조기에 포착하고, 계획되지 않은 가동 중단을 방지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롤란트 지펠 작센밀히의 기술책임자는 "센스아이 도입 후 펌프의 이상을 조기에 감지해 수십만 유로의 비용을 절감했다"고 밝혔다.
AI 기반 제조 혁신을 주도하는 대표 기업으로는 대만 폭스콘이 꼽힌다.
애플의 주요 협력사인 폭스콘은 자회사 폭스콘 인더스트리얼 인터넷(FII)을 중심으로 디지털 트윈, AI 기반 품질 검사, 자동화 조립시스템 등을 도입해 일부 생산라인은 무인화율이 90%를 넘었다.
폭스콘은 중국 현지 공장에서 화웨이의 AI 칩셋 '어센드(Ascend)' 플랫폼을 활용해 전력제어 장치의 품질 검사를 인공지능으로 수행하고 있다.
실리콘 그리스 도포 상태나 명판 부착 여부를 딥러닝 기반 컴퓨터 비전 시스템이 실시간으로 감지해 불량률을 낮추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에머지(Emerj)는 폭스콘이 지멘스와 협력해 AI 서버 생산라인에 디지털 트윈을 적용한 사례를 소개하며, 이를 통해 에너지 소비를 30% 이상 절감하고 공정 효율을 높여 수익성까지 개선했다고 분석했다.
중국의 전기차 업체 BYD와 니오(NIO) 역시 AI 휴머노이드 로봇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중국 로봇업체 유비테크(UBTech)가 개발한 'Walker S1'은 BYD 공장에서 나사 조립, 부품 분류, 품질 검사 등 다양한 작업을 수행 중이다.
키 172cm, 몸무게 76kg인 Walker S1은 시각 인식 및 AI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정밀 작업을 수행하며 무인 물류 시스템과 연계돼 공정 전체를 자동화할 수 있는 구조를 갖췄다.
니오는 2027년까지 전체 노동력의 30%를 AI 로봇으로 대체할 계획이다.
유비테크는 공정 자동화의 70% 이상을 로봇이 담당하고 인간은 관리와 협업에 집중하는 구조로의 전환을 추진 중이다.
기술전문지 인터레스팅은 작년 10월 "유비테크는 주요 완성차 업체로부터 Walker S1에 대한 500건 이상의 주문을 확보했다"며 "운영 간소화를 위한 자동화 기술 도입이 중국 제조업의 인력난 해결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로봇이 로봇을 만든다'는 개념을 현실화한 일본 화낙(FANUC)은 다크팩토리(조명이 필요없는 공장)의 대표 주자다.
야마나시현 오시노 공장의 화낙 로봇 생산라인은 약 30일간 인간 손길 없이 무인으로 운영된다.
하루 최대 50대의 로봇이 생산되며, 전 공정은 원격 모니터링 시스템으로 제어된다.
이 공장은 냉난방 없이 가동돼 에너지 효율성이 뛰어나며, 부품 가공부터 조립·검사·포장에 이르기까지 AI와 로봇 시스템이 정밀하게 통합돼 있다.
로이터통신은 2023년 5월 테슬라의 '언박스드(Unboxed)' 제조 방식을 보도하며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더 저렴하고 수익성 높은 전기차를 대량 생산하기 위해 전통적인 자동차 제조 방식을 급진적으로 재설계해야 한다"고 발언했다고 보도했다.
이 방식은 생산 비용 절감, 공장 규모 축소, 그리고 차량 생산 효율성 향상을 위해 고안됐다.
기존 조립라인 방식과 다르게 차체를 하위 모듈로 분리해 동시 병렬로 조립하는 방식이며, 이를 통해 공장 크기를 40%, 비용을 최대 50% 줄이는 효과가 있다.
AI 자율제조는 단순한 자동화를 넘어, 불확실한 공급망 환경과 숙련 인력 부족, 생산비용 상승 등 다양한 산업 리스크를 극복하는 '게임체인저'로 주목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향후 5~10년 내 주요 제조 공정의 상당 부분이 AI와 로봇에 의해 대체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작년 3월 "AI 기반 휴머노이드 로봇이라는 파도가 제조라인에 도래하고 있다"며 후 5년 내 AI가 설비 운영·조립·정비 등 핵심 공정까지 담당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도 "로봇은 인간보다 더 위험하고, 24시간 작업 가능하며, 무거운 물체도 옮길 수 있다"며 산업 혁명급 변화가 임박했다고 강조했다.
모건 스탠리 분석가들은 2030년에 인간형 로봇의 누적 판매량이 90만 대, 2040년에 1억3400만 대, 2050년에 10억2000만 대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