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보시고 도움이 되셨다면 다른 분들도 읽어 보실 수 있게 추천 부탁 드립니다.

저는 의료기기 인허가 업계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의료기기 인허가 및 수입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체온계 및 위조 체온계를 수입 업체들과는 전혀 연관이 없으며, 집에서는 소위 말하는 '정품'을 쓰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이 의료기기법, 대외무역법, 품질관리 등 여러 분야에 걸쳐있다보니 설명이 좀 길고 복잡합니다. 읽기 어렵게 느껴지실 수도 있으니 미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일단 결론 부터 말씀드리자면,
이번 식약처 및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위조품, 가품 및 짝퉁이라는 표현은 굉장히 부적절하며 옳지 않은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짝퉁 또는 위조라고 하면 미인가 불법 공장에서 가짜 제품을 만들어 가짜 상표를 붙힌 것을 말하는데, 지금까지 나온 보도자료를 보면, 불법 공장등에서 생산했다는 내용은 전혀 없이 직구 제품들을 일괄적으로 위조품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식약처의 판단 기준대로라면, 직구업체들 통해 구매하는 제품들 뿐만 아니라, 미국 아마존에서 직구한 제품도, 독일로 여행갔다가 현지에서 구매한 브라운 체온계도, 미국에 사시는 친척이 현지에서 구매해 선물로 보내주신 브라운 체온계도, 대한민국 국경을 넘어오는 순간 위조품, 가품 및 짝퉁이 되는 것이며, 오로지 국내에서 정식으로 판매되는 이른바 '정발' 제품만 진품이 되는 겁니다.
직구 제품 구매하신 분들, 직구라고 짝퉁 아니니 아이들에게 미안해 하지도 마시고, 죄책감 갖지 마세요.


정품, 위조품, 짝퉁의 정의?
의료기기법상 브라운 체온계와 같은 귀적외선체온계는 의료기기로 분류가 되며, 의료기기를 제조 또는 수입하기 위해서는 해당 의료기기의 등급에 따라 국내규정에 따라 필요한 시험검사등을 거쳐 제조 또는 수입 국내 신고, 인증 또는 허가를 받아야합니다. 또한 해당 의료기기를 수입하기 위해서는 제품이 국내에 반입되기 전에 사전에 수입 요건을 득한 후 수입신고 및 통관 절차를 거치며, 수입 의료기기를 판매하기 위해서는 의료기기법에 맞게 표시사항 및 사용설명서를 부착 또는 첨부하여야 합니다. 식약처가 말하는 정품은 위의 과정을 거친 제품들입니다.

식약처에서 말하는 이른바 위조품, 가품 및 짝퉁이라고 하는 제품들은 대부분 해외직구 사이트에서 구매하신 제품들로 국내 인허가 과정을 거치지 않고 해외 구매대행자를 통해 구매자가 구매자 본인의 개인통관고유번호를 통해 직접 통관을 거친 제품입니다. 식약처 말대로라면, 직구를 통해 LG나 삼성 TV를 구매하면 국내법상 관련 인증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짝퉁이 되는 겁니다. TV 뿐만 아니라 직구하는 거의 모든 제품이 짝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품 인쇄 및 포장이 다른 이유?
이번 식약처 보도자료를 보면 정품과 위조품 비교 사진을 올려놓았는데, 위에 말씀드린 것 처럼 각 나라마다 의료기기 뿐만 아니라 다른 재화 및 용역의 판매에 대한 각기 다른 규정이 있습니다. 각 나라의 규정에 맞게, 우리나라 의료기기법에 맞게 표시사항을 달리 한 것이지 짝퉁이라서 없는게 아닙니다. 오히려 짝퉁이라면 더 똑같이 만들지 않을까요?

시험검사 결과 부적합?
제가 보기엔 이게 이번 사건의 본질인 것 같습니다. 보도자료를 보면 시험검사 방법 및 기준이 있고 결과치는 있는데, 해당업체에서 몇개씩 구매했는지, 그러니까 전수검사는 불가능하니 표본 검사를 한 것인데 샘플을 몇개로 설정하여 시험한 건지에 대한 자료가 없습니다. 이런 시험검사는 달랑 한개 해놓고 합격 불합격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국내에 정식으로 수입된 제품들에 대한 시험검사 결과가 없습니다. 이 또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여러개를 시험검사 한 것이라도 문제인게, 이렇게 되면 브라운 체온계 자체의 성능이 미비하는 것을 증명하는 꼴밖에는 되질 않습니다. 의료기기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제품들은 품질관리라는 과정을 거칩니다. 제조사들이 생산하는 제품들은 언제, 어디서, 어떤 작업자가 만들더라도 동일한 결과물이 나와야 하기 때문에 제조업체들은 품질관리라는 것을 하게 되어있습니다. 아시겠지만 브라운이라는 회사는 절대 작은 회사가 아닌 규모가 굉장히 큰 글로벌 업체입니다. 미국이나 멕시코, 스위스에 공장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나라에서 생산을 하건 제품의 품질은 동일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 생산공정에 대한 동일한 메뉴얼을 가지고 있습니다. 원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만약 한 곳에서 생산한 제품에 문제가 있으면, 이는 다른 곳에서 생산한 제품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결론적으로 직구 제품에 문제가 있으면 국내 유통되는 제품들도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보도자료를 통해 제가 느낀건, '해외 직구 제품은 문제가 많으니 국내 정품을 사야겠다'가 아니라, '해외 제품이 문제가 있으면 국내 제품도 비슷하게 문제가 있겠구나' 입니다.

사건의 양상을 보면서 왜 이런 일이 터졌을까 생각해봤는데.... 여러 가지 정황을 봤을 때 구린내가 폴폴납니다. 너무 구립니다.
정품을 보시면 수입자가 '사이넥스'라는 회사로 되어 있습니다. 사이넥스는 대형 의약품 의료기기 인허가 컨설팅 업체로 굳이 비교를 하자면 컨설팅 업계의 '김앤장' 이나 '태평양' 같은 업체 입니다. 네, 뭐 그냥 그렇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