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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을 보고 느꼈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고하여 귀신이 실재하는 것이 아니듯이 파워정코님이 하나님을 느끼지 못했다고하여 하나님이 실재하지 않는건 아닙니다. 즉 사람의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것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습니다. 반대로 이는 하나님을 분명히 느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도 적용됩니다. |
야나토님의 의견에 참 공감이 가네요 ^^;; 궁금해서 야나토님께서 쓰신 글들을 쭉 훑어보았는데 진심으로 \"기독교\"에 대해서 고민하시고 질문하시는 분인 것 같아서 흐뭇한 미소가 머금어지는군요 ㅎㅎ 01. 파워정코님께서는 \"믿은지는 좀 되었는데 날라리다.\"라고 자신을 진단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진단하셨나요? 먼저 그 부분부터 짚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성서의 증언에 의하면 하느님은 분명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악인에게나 의인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리시고 햇볕을 주시는 자비의 사랑입니다. 또한 악인의 횡포와 그의 횡포아래 압제당하는 의인을 향해서는 마지막때에 \"공평과 정의의 통치\"를 베푸시기로 약속하신 하느님입니다. 먼저 이런 하느님에 대한 개념을 확실히 짚고넘어가면 인간의 믿음의 높낮이는 하느님앞에 존재할 수 없습니다. 물론 서로간에 피차 비교하고 영적지도층을 만들고 영적 장자와 서자를 구분할 수는 있겠지요. 또 공동체내에 존재하는 프레임에 의거해서 공동체를 이끌고 갈 Elder정도를 정할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하느님이라는 절대적 존재 아래에서는 인간의 믿음이란 거기서 거기라는 것을 일단 인식하셨으면 좋겠습니다. 02. \"하느님을 느낀다.\" 사람들은 어떨때에 초월적 이며 내재적인 존재 혹은 절대적 존재로써의 하느님을 \"느낀다\"라는 단어를 사용할까요? 일단 제 기준에서는 한때에는 내 자신의 상황이 술술풀릴때 \"느낀다\"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또 기도회/수련회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눈물을 흘릴때 \"느낀다\"라고도 말했죠. 또 한편으로는 홀로 내적으로 깊은 상태에 빠질때 내 속에서 느껴지는 뜨거움, 꿈틀거림, 따스함, 포근함같은 심령의 느낌을 보고 \"느낀다\"라고도 말했습니다. 방언/예언/치유와 같은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거나 두 눈으로 볼때에도 그런 \"느낀다\"라는 표현을 사용했구요. 또 성서의 내용을 읽고 문맥과 맥락이 이해가될때에도 \"느낀다\"라고도 말했지요. 특히나 요 근래에는 지극히 낮은자가 고통받고 탄압받는 현장을 볼때 괜히 \"느낀다\"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처럼 \"느낀다\"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무궁무진합니다. 파워정코님은 어떻게 \"느낀다\"를 이해하고계시나요? 저같은 경우는 기독오타쿠라서 왠만한 \"느낀다\"라는 단어의 의미를 대부분 체험해봤지만(그만큼 신앙의 변천사가 다양했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관된 하나의 성향을 갖고 있습니다.(종교를 막론하고 좀 그런편이지요) 파워정코님만의 성향을 찾아보시는 것은 어떤지요? 약한자/낮은자를 찾아가보신다거나, 뜨거운 찬양예배를 찾아가보신다거나, 깊이있는 신학도서를 읽어보신다던가, 황홀한 자연속에서 깊은 묵상에 빠져보신다던가... 어쩌면 파워정코님의 \"느끼고 싶다\"라는 고백은 이미 그 하느님에 대한 \"갈증\"을 느낀다는 점에서 이미 \"느끼고 있을\"수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노자가 그랬나요? \"없는 것이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죠.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도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즉 관념속에던 실재속에던 존재하지 않는다면 \"없다\"라는 단어를 사용할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외계인이 없다\" 혹은 \"신이 없다\"라는 말을 하지만 그 의미는 외계인 혹은 신이 우리의 관념속에서는 이미 자리를 잡고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없는 존재에 대해서 \"없다\"라고 말하지 않죠.(말 안해도 이미 없는 것이니까요.) 그런면에서 볼때 이미 파워정코님은 하느님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고, 그 자체로써 하느님을 깊이 경험하고 있는 중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03. 나머지 조언입니다. 한국교회의 평신도들의 영적갈증은 사회가 발전할수록 더 심해지고 있다고 봅니다. 그만큼 공동체가 해체되고 있으며 개인의 내면에 대한 관심이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기때문이지요. 이는 한국사회 자체가 영적인 굶주림 현상에 있다고 표현해도 좋을만큼 한국사회의 모든 영적이고 내면적이고 관계적이며 공동체적인 부분은 속속들이 해체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 속에서 아무리 \"복받아라\"는 설교를 들어도, 아무리 뜨겁게 기도하고 찬양해도 그런 갈증은 심해질 수 밖에 없는 실정입니다. 저는 하나의 해결책을 제시하고 싶은데요. 정말 개드립치고 웃고 장난칠 수 있고, 또 한편으로는 진지하게 자신의 삶의 고민과 내면의 갈증과 아픔을 나눌 수 있는 공동체를 선택하세요. 그런 공동체가 주변에 없다면 예수원이나 다일공동체 혹은 모세골공동체같은 개신교 공동체같은 곳을 한번쯤 방문하고 오시는 것도 좋습니다. 또한 가끔씩 정말 마음에 드는 조용한 노래를 mp3에 담아서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이곳저곳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 곳에서 사색을 해보세요. 그리고는 돈, 물질, 취업, 집에 대한 생각보다는 자연의 향취를 느끼고 바람의 숨결을 마시며 요동치는 생명의 역동성을 맛보시기 바랍니다. 그런 과정이야말로 참 하느님을 발견하는 과정중의 일부라고 전 생각합니다. 또 여기다가 주변의 약한 자를 돕는다거나 소외받는 자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행위까지 하신다면 금상첨화지요. 마지막으로 제가 조언드린 몇가지 팁은 꼭 해야만 하는 \"율법\"과 같은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느님을 만나는 방법에 대한 것이지요. 저 같은경우에 실제 하고 있는 세가지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제가 설명했던 저런 작업을 통해 \"때로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이면 색욕에 몸부림치는 청춘이며 통장에 찍힌 잔액과 카드고지서에 짜증내며 또 미래를 걱정하는 한 청춘중의 한명\"인 제가 참 생명이시고 구원되시는 하느님을 경험하고 있답니다. 앞으로 파워정코님도 사회적으로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성취하시며 소명가운데 걸어가시며.. 또 영적이고 관계적이며 내면적으로도 참 생명이신 하느님과 동행하길 바랍니다. 아니 그 동행하심을 체험하며 살길 바랍니다. :) 그럼 이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