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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이님의 [한국]개신교도에 대한 비판은 온당합니다....하지만, 1
[* 비회원 *] 3 2012-09-18 20:59   조회 : 727

저는 잘아시다시피 개신교도입니다.
대한민국에서 몸집이 큰 축에 속하는 장로교파 평북노회 소속입니다.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나 고민하다가...군대 이야기를 해보는게 좋겠다 싶어서 써봅니다.


저는 전방의 매우 빡센...혹은 빡세다고 알려진 부대 출신입니다.

군법에는 종교의 자유가 있지요. 그것이 사회적 해악에 가깝거나,
군대라는 국가의 부속된 사회체계를 위협하지 않는 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합니다.


그러나 많은 분들은 잘 아실겁니다.
군대에 보장된 휴일따위는 그리 많지 않으며,
군대는 늘 노동력이 부족한, 부족하게끔 인식되거나 유지되는 집단이란 점 말입니다.


종교활동은 보장된다, 하지만 군대엔 노동력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한계상황]이 발생합니다.

내가 종교행사를 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종교행사의 [권리를 뺏어야만] 가능한 상황이란게 존재한다는 말이죠.



군대라는것이 보여주기 위한 전시행정의 온상이기에
1순위의 권리는 이등병들에게 [의무적으로]돌아갑니다.
그리고 남겨진 종교행사의 자리는 그것을 필요로하는 사람들보다 늘 적습니다.

자기신앙을 지킨다는게 뭘까요?

교회를 열심히 가는것?

타인의 절실함을 짓밟고 나의 만족을 충족시키는것?
내가 종교행사를 가기위해 내 밑의 누군가를 주말 [조뺑이]를 시키는것?



제 신앙의 갈등은 여기서 시작했습니다.
[물질문명-이익에 중독된 종교]는 이것에 대하여, 어떤 가르침도 내어놓지를 못합니다.

[내]가 중요하다라는 가르침을 배설할 뿐이죠.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 안에서 가해자가, 혹은 피해자가 생겨납니다.

제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는 밝힐 필요가 없을 듯합니다.
그건 저의 답이지, 다른분의 답이 아니기 때문이죠.



물질문명에 오염된 [기독교의 죄악]을 간결하게 말하자면 바로 이것과 같습니다.
이타적일 수 없는 박애주의는 허영과 가식이죠.
그건 그냥 [교회다니는 사람]일 뿐, 신앙이라 말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한국 개신교는, 그것을 주일엄수 열심히 해야한다는 논리로 [나]만 가르치고 있어요.
그래서 타인을 침해하고, 모욕주며, [신앙의 겁탈]을 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피해자]인 작은이님을 긍정합니다.

동시에 부정합니다.


피해자란 말은 어떠한 현상의 결과에 대한 [내용증명]일 뿐입니다....그것은 [권리]가 되지 못해요.


만약 인류의 지성이나 보편윤리나 양심의 성장이 함무라비 법전 시대에 머물러 있다면
피해자로서의 복수나 증오도 긍정될 수 있겠지요.

피해자이기에, 가해자로서의 권리를 가질 수 있을것입니다.



그러나 피로 피를 씻는 시대는 지났어요.
피해자라는 내용증명이 가해자로서의 권리를 지니던 시대는 지났다는 거지요.
가해자가 되는 순간, 피해자로서의 지위는 소멸합니다.


[정상참작]이란 말이 있지요.
이는 무죄선언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사회적 관용에 의한, [이해와 동정]을 말하는것이죠.

가해자로서의 책임에 대한 경감이 일어나는것이지, 가해자라는 [업]이 무마되는게 아니란 것이죠.


이렇게 사회는, 기계적 잣대로의 법과, 윤리와 도덕, 관용과 자비라는 사회공리의 보조잣대가 공존합니다.
어느것 하나만으로 세상을 정의하고 기능하게끔, 세계가 단조롭지는 않아요.



저는, 작은이님의 [분노]를 긍정합니다.
동시에, 작은이님의 [증오]는 부정합니다.



왜냐하면 스스로도 자기 불합리의 흔적을 극복하지 못함을 잘 알기 때문이죠.


어느분께서 작은이님께 만약 작은이님의 부모님이 신천지교도라면 어떻게 행동하겠느냐라고
물었을 때 작은이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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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가 무슨 문제가 있는지 이야기하고 '설득'은 할 겁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경제적인 것으로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은 미리 막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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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일전에도 흡연을 예로 말씀드렸다시피,
[그 사회가 공리적으로 흡연을, 법과는 무관하게, 위해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흡연의 법적 보장과는 달리, 사회는 이를 위해한것으로 보고 자정적 행위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끌어낸다]라는 단어의 안에는 문자적 의미로서의 단절이 아닌, [과정]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설득을 하고, 경제적 누출을 막고....이것을 요약하면 뭘까요?






저는 이것을 [끌어내려는 노력]이라고 평하겠습니다.

제가 하는 말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끌어내려 노력함이 옳다...고 말하는 거죠.







작은이님과 제가 반목, 혹은 그렇게 대치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문제의 본질은
다비드님이 매우 직관적으로 잘 설명해 놓으셨죠.

저나 작은이님이나 문자적 표현의 차이가 있을 뿐 관통된 중심철학은 같습니다.

저는 작은이님의 관념을 부정하는게 아닙니다.
그 관념에 내제된 감정의 방향성이 잘못되었다고 하는것이죠.


경험상,
같은걸 말하는데 다르다고 여길때는

1.상대의 사유의 깊이에 도달하지 못했거나,
2.대상 자체를 부정하려 들 때

이 두가지 경우가 거의 전부입니다.




[개신교인] 조르미라는 낙인을 배제하고 말하자면, 사실 꺼리낄게 없는 이야기죠.
저는 종교를 등에 업고 말한적이 없습니다. 그럴만큼 제 스스로가 타락했다고 여기지도 않구요.

저는 그 누구보다 천주교를 포함한 기독교 전반에 비판적 견지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리고 천주교가 사회적 관용을 배워가며 성장하는 동안, 자기 아집에 빠져 이웃을 사랑하지 못한 개신교에 대하여 혐오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종교를 구성하는 [집단 지성]에 대한 증오이지,
그 구성원인 각각의 [인격체- 사람]을 향하지는 않습니다.




제게 있어서 신천지는 [현재] 사회공리적으로 위험한 종교입니다.
천주교는 아주 [오래전의 죄악- 마녀사냥, 십자군 원정, 나치의 홀로코스트 용인 및 묵인]을 겨우 극복한 수준이죠.
통일교는 [과거] 사회공리적으로 위험했고, [현재] 사회적 관점으로서의 보편종교 로서의 재정비를 시작중입니다.




제게 있어서 종교를 보는 시각은,
교리가 아닌 [사회의 보조 윤리로서의 기능]입니다.




저는, [현재의] 개신교가 옳다 여기지 않습니다.
동시에, [현재의] 신천지가 옳다 여기지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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