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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찾아보았는데 이 한줄의 의미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없었습니다.
사실은 대게 자신들이 이해하는 방향에서의 해석을 하고 있더군요.
물론 철저히 성서적인 해석도 있고. 여러가지 해석이 있겠지만..;;
정말 진짜 의미가 무엇인가요..
정말 말 그대로 나를 희생해서 남에게 원하는 것이상을 해주라 일까요.
\"사탄의 체제와 예수의 비폭력\" 이라는 책을 쓴 월터 윙크에 따르면, 당시 로마법상 로마 군인이 부역을 지시할때 거리 제한이 5리였다고 합니다. 그 이상의 부역을 지시한다면 법을 위반하는 것이기에 곤란한 상황이 된다는 군요. 이러한 비폭력적인 저항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마태복음 5장의 본문에서는 오른뺨&왼뺨, 겉옷&속옷 얘기도 같이 나오는데 오른뺨&왼뺨 얘기는 손등으로 하급자의 뺨을 때리는 관습을 넘어 대등한 상대에게 때리는 방식인 손바닥까지 사용하게 만드는 것이며, (손등으로는 상대의 오른뺨을 때리게 되고, 손바닥으로는 상대의 왼뺨을 때리게 됩니다) 겉옷&속옷 얘기는 속옷까지 못 뺏도록 하는 율법규정에 맞서는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래서 5리를 넘어 10리를 가려고 하면 도리어 시키는 사람이 말리게 되고 오른뺨을 맞고 왼뺨을 들이대면 뺨을 때리질 못하게 되며 겉옷을 주고 또 속옷을 주려하면 거절하게 되는 상황이 된다는 거죠 이렇게 이 세가지 경우의 얘기를 월터 윙크는 예수가 억압에 맞서는 비폭력적인 저항의 방식을 얘기하는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지금으로 생각하면 마치 옷벗고 드러누워 맘대로 해라하고 시위한다는 느낌이랄까요 ㅎㅎ 이 구절들이 억압에 그냥 순응하도록 하는 것이라면, 성경의 전체적인 맥락과 저항하는 예수의 삶과도 거리가 있는 것이 되버리겠죠 이 구절로 향린교회 조헌정 목사님이 하신 설교가 있네요 http://www.yuhs.or.kr/mssn_realize/... |
잘 정리해 주신 의견에 덧붙이면, 폭력에 순응하는 것이 사랑은 아니죠 학대하는 남편에게 왼쪽뺨을 대는게 사랑이 아닙니다. 자발적 희생과 강압적 희생은 다른 것이죠. 분명 예수님의 가르침은 희생의 삶, 섬김의 삶이 되나 강압적 희생 다시 말해 억압과 착취에 순응하는 걸 사랑이라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
저는 좀 궁금합니다. 인간적인 관념이라면 폭력에 순응하는것이 아니라 맞서 싸우는것이 맞다고 봅니다. 내것을 위해 투쟁해야 하고요. 학대하는 남편에게 도망치던 같이 싸우던 이게 일반적인 사람의 관점이죠. 그러나 기독교 관점에서는 원수도 사랑하라 라고 가르치죠. 그것은 나를 괴롭히는 사람 마저도 사랑하라는것이 아닐까요..?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말은 폭력의 남편에게 같이 싸우거나 도망치거나 하지 않고 사랑으로 이기라는 말이 아니였을까요 |
질라님의 의견이 이것인가요? 예수님께서 아래처럼 말씀하신 이유가.....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 왼쪽도 돌려대면 빰을 때리지 못하게 된다는 의미라는 것이죠?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 까지도 가지게 하며 -> 속옷을 원하지만 겉옷을 먼저 주고, 속옷을 주려하면 거절한다는 의미? 결국엔 원하는 속옷은 주지 않는다는 것이죠?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 예수님은 십리를 동행하라 말씀하셨지만 실제로는 십리를 동행하려면 도리어 사람이 말리니 동행하지 않게 된다는 의미라는 것이죠? 제가 글을 잘 이해했나요? 밑에 설교는 안봤습니다. |
제 의견이라기보단, 월터 윙크라는 신학자의 의견이죠^^ 속옷을 원하는 자체가 율법에 어긋나는 겁니다~ 애초에 원하면 안되죠 그 외에는 맞게 얘기하신거구요~ |
제가 궁금했던것이 이건데요. 지금으로 생각하면 마치 옷벗고 드러누우라는 이야기는 아닌것 같습니다. 왜냐면 말이죠.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잖아요. 저런 역사적 상황의 의미에 한정하는것이 아니라 달라는것 이상으로 주는 박애주의의 의미인지 아니면 님 댓글처럼 비폭력 저항을 하라는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단순히 다른 사람에게 더 준다고 해서 그것이 순응하는것인지요. 애초에 오리를 가는것 자체가 이미 순응이 아닌가요. 거기에 꼭 저항하라는 의미로 해석을 붙이는 이유에 궁금합니다. 어떻게 보면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말은 진짜 행해줌으로써 이기라는 말이 아닐까요. 역사적인 상황의 정의에서 이해야하는것인지 아니면 성경 전체적인 메시지에서 의미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저항하는 예수의 삶이라고 하셨는데. 반대로 저는 기존의 시온주의 정서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면 오히려 희생에 가까운데 말이죠.... 저항의 형태는 희생이고 결국 그렇다면 진짜 말그대로 십리를 더 가주라는 의미가 아닐까요..] |
제 생각에는 사람과 행위를 구분해야할 것 같습니다 원수를 사랑한다고 해서 원수의 악한 행위를 인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의 억압적 행위에 대항한다고 해도, 그 사람을 사랑하며 선으로 대해줄 수 있겠죠 5리를 가는 것은 순응이 맞죠. 그 이상을 가는 것은 법적으로 금지된 부분이기에 저항이 된다는 거구요 그래서 비폭력적인 저항이 되는 겁니다 무조건적으로 달라고 주는 행위는 사람들에게 이용당하기 딱 좋은 행위라서 주는 사람은 선한 의도였지만, 받는 사람의 악한 의도로 인해 착취가 되버리죠 도와주는 것과 이용당하는 것의 차이가 미묘해서,, 케바케로 봐야할 것 같습니다^^ 오병이어 사건 뒤에 빵을 바라며 쫓아왔다면서 다 흩어버리기도 하시는 장면이 그런 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역사적인 맥락과, 성경의 흐름 모두 감안하고 해석해야겠죠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이 힘 있는 자들에게는 강하게, 힘 없는 자들에게는 부드럽게 대하시죠 권력자에겐 저항을, 낮은자에겐 희생을 하신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
과연. 예수님이 말한 의미가. 오리를 가고자 하는 사람에게 십리를 더 가주라는 말이. \" 십리를 더 가주면 상대방이 곤욕에 빠지니 그때만 한정해서 더 해주란 말이였을까요?.\" 뺨을 때리는 경우에도 \" 한쪽뺨은 주되 다른 사람이 뺨을 대어 다른 사람이 곤경에 빠질때에만 뺨을 대라\" 나를 괴롭히고 압제하는 자에 대해서 더 해주되 항상 상대가 곤욕에 빠질때에만 사랑하라. 라는 의미인가요. 여기서 근본적인 어려움이 남습니다. 과연 어디까지 희생해야 하는가. 희생을 할때 꼭 다른 상대가 곤경에 빠질때에 사랑해야 하는가. 사랑이라는것은 근본적으로 무엇인가.. 만약 이용당하지 않기 위할 만큼만 사랑하고 내주어라. 그리고 상대가 곤경이나 어려움에 빠질만큼 사랑하라. 이것이 사랑의 종교라고 할 수 있나요. 그런데 우리는 생각해야합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이 말은 원한.. 나에게 해를 입힌 사람마저도 사랑하라는 이야기 입니다. 중요한점은 거기에 단서가 없다는것입니다. 이용하라 이용당하라. 이것은 세상적인 이야기 아닙니까. 그러니까 중요한점은 우리가 사랑의 종교나 산상수훈을 배우면서도 사실은 세상적인 요소에 의해서. 이용당한다 아니다를 구분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무엇이라고 하셨는지 곰곰히 생각해보면. 오히려 세상적인것에 가치를 두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요.. 어렵습니다... 여기에 대해 답을 주셨으면 합니다. |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너희가 들었으나..." 위 구절이 제일 처음 문장이죠 그리고나서의 내용들은 위 구절의 폭력적 저항이 아닌 비폭력적 저항이라고 하는 거구요 시간여행쟈님 말대로 해석하면 말씀하신대로의 의문이 나오는 거죠 저는 월터 윙크의 해석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하기에 사랑하라는 의미와 연결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상대가 곤경할때만 사랑해야하는가 같은 의문은 공감가질 않네요^^;; (너무 문자적인 해석이기두 하구요) 그와는 별개로 사랑을 어디까지 할 것이냐에 대해서 제가 얘기하는 것은 현실적인 겁니다 예수님이 얘기하는 사랑을 저는 전적으로 따르지 못합니다. 그렇게 하면 저는 정말 문자 그대로 죽을 수밖에 없거든요. 죽을 각오로 사랑하지 못한다면 어디까지 사랑할 것인가에 대한 스스로의 한계점을 설정해야겠죠. 기부를 하더라도 제 월급을 통째로 할 수는 없잖아요? 그걸 세상적이라고 표현하시겠지만 저는 현실적인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제가 이해하는 세상적인 것은 권력,힘,경제논리로 판단하고 찍어누르는 행위인데 세상적인 것의 의미를 어떻게 파악하고 계신건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