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사란.
제사를 지내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신과 인간, 이승과 저승, 또는 땅과 하늘 이 두 존재와 이 세계 사이에서 어떤 통로, 다리를 놓는 과정이 제사가 됩니다.
신과 인간 사이는 존재적 단절이 있겠습니다.
무력한 인간과 전능(전능은 아니겠으나 어떤 특정종특)한 신 사이에 인간의 필요와 신의 충족을 위한 거래가 제사가 됩니다.
인간의 특정 신에 대한 만족을 통해 그 신으로부터 어떤 축복을 받아내는 과정이 제사가 된다 보겠습니다.
이때의 제사는 신을 만족시켜야 하기 때문에 신에 따른 제물과 또 제례의식이 중요하다 보겠습니다.
이승과 저승은 시공간의 단절이 됩니다.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자유롭게 지나갈 수 없는 것이죠.
그러나 망자에 대한 그리움은 항상 이승에 존재하는 자들에게 있게 됩니다.
해서 그 둘 사이에 통로와 다리를 놓는 과정을 통해 이승의 사람이 저승의 망자와의 만남을 갖는 것이죠.
이것이 또한 제사가 됩니다.
이때는 시공간의 단절이기 때문에 이승의 문과 저승의 문이 가까워지는 시간, 그리고 가까운 장소를
중요시 합니다.
땅과 하늘은 위 두 가지 개념이 다 있는 것이죠.
공간적 단절, 그리고 땅의 존재, 하늘의 존재라는 개념으로요.
이상이 일반적인 제사의 개념이라 보겠습니다.
2. 유대주의(유대교)
구약에서 보는 세계관은 본래 인간과 신 사이엔 어떤 단절도 없었습니다.
에덴에서 신과 인간이 더불어 사는 살았던 것이죠.
그럼으로 에덴의 원인간에겐 제사는 필요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죄를 지음으로 인간과 신 사이에 단절이 생깁니다.
이것이 부정과 거룩의 단절이라 하겠습니다.
유대주의의 특징은 유물론적 일원론입니다. 한 세계에 땅과 하늘이 같이 있다 보는 것이죠.
이 한 세계가 두 세계로 나뉜 것입니다. 그건 다른 차원의 나눔이 아니라
죄로 인한 나눔이라 하겠습니다.
마치 구름으로 인해 이쪽과 저쪽으로 나뉜 것 처럼 말입니다.
해서 유대주의의 제사의 특징은 죄의 담을 허무뜨리는 작업이 됩니다.
부정한 존재를 정결한 존재로 바뀌는 작업인 것입니다.
이는 일반 제사에서 나타나는 신을 만족시키는 제사와는 다릅니다.
하나님을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부정한 나를 정결한 존재로 바꾸면 죄의 한계를 극복해 내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큰 특징으로 일반 제사와 유대교 제사는 다릅니다.
그렇다고 유대교 내에 모든 제사가 이런 특징을 가지진 않습니다. 일반 제사의 특징 역시 많이 담겨 있죠.
아마 가나안 정착에서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합니다.
3. 기독교는 이런 구약의 유대주의에서 시작하나 유대주의를 극복하는 종교가 됩니다.
일반적인 극복으로 율법에 국한되어 생각하는 경향이 큰데,
사실 유대교 제사를 극복하였다 보는 것이 더 정확하겠습니다.
구약에서 주신 하나님의 제사법은 부정한 자를 정결케 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죄의 장벽에 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주장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죄의 문제가 다 해결되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제단에서 어린양 예수의 피를, 대제사장 되는 그리스도 예수가 드린 제사로 인해
인류의 모든 죄의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 이들에겐 더 이상 제사는 없습니다.
거룩한 인간이 부정케 되어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 자기 죄를 씻겨 내는 정결함이 있어야 했으나,
십자가로 말미암아 인간은 다시금 거룩한 존재가 될 가능성이 갖게 된 것입니다.
거룩한 존재가 정결법 또는 제사로 정결해 질 필요가 없는 것이죠.
단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제사를 기념하며 감사하고 기뻐할 뿐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에서 드리는 예배가 됩니다.
해서 기독교 내 에는 제사장, 곧 사제가 없습니다.
만인제사장이란 건 모두가 사제가 되었다는 의미보단 거룩한 신분이 되었다는 것으로 봐야 합니다.
그리고 기독교 내엔 제물은 필요가 없습니다.
헌금은 결코 제물이 아닙니다. 교회와 이웃에게 드리는 기부금이 됩니다.
또 기독교 내엔 제단이 없습니다.
교회는 성전이 아니라 모임 장소일 뿐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특징이 됩니다.
이런 제사와 예배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기독교가 산으로 올라가죠.
목회자가 제사장이 되거나, 헌금은 제물이 되어 자기 의를 드러내는 길이 되고,
교회가 성전이 됨으로 교회와 세상의 담이 되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문제의 대부분이 여기 있는 것이죠.
기독교의 특징은 더 이상 세계와 세계 사이에 존재와 존재 사이에 막힌 담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더 이상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사는 땅에 이뤄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은 조물주와 피조물이란 본질적 차이는 있겠으나 주인과 종의 계급적 차이가 아버지와 아들이란 신분적 평등을 이룹니다. 또한 인간의 실존적 한계, 죽음과 생명, 죄와 의, 부정과 거룩, 결핍과 충만 등의 모든 실존적 벽이 사라집니다. 그리고 부자와 가난한 자, 지배하는 자와 억눌리는 자, 의로운 자와 부정한 자, 남자와 여자, 유대인과 이방인 등의 모든 차별과 나눔이 사라집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핵심이 되겠습니다. 이런 나뉘임, 담과 장벽, 단절이 없는 종교이기 때문에 결코 제사가 있을 수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불교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 역시 이런 기독교의 핵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과 부처 사이에, 그리고 모든 존재와 존재, 세계와 세계가 윤회와 연기로 연결된 어떤 장벽과 담과 막힘이 없는 종교라 보는 것이죠. 기독교가 인간 중심의 단절이 없는 것에 비해 불교는 자연과 인간 사이의 단절까지도 없다 말합니다. 이것이 불교의 핵심이라 보는 것이죠. 해서 이런 불교의 특징이라면 불교에도 제사가 없겠구나 생각해 봤고 조사해 보니 불교에도 제사가 없더군요. 자비를 쌓기 위한 또는 쌓아놓은 자비를 전가시키기 위한 \'재\'란 것이 있는 것이고요. |
헛소리하지 마시고요. 자비를 쌓는것이 아니라 선근공덕을 쌓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자비를 전가(?)시킨다는 말은 뭔 말인가요? 님이 지어낸 신조어 인가요? |
폭넓게 공덕을 자비라 칭했습니다. 전가 란 건 기독교표현입니다. 내가 재를 들여 쌓은 공덕을 망자의 공덕으로 돌리는 행위라 보면 됩니다. |
자비는 베푸는 것이지 쌓는게 아닙니다. 그리고 공덕은 자비가 아닙니다. 그리고 불교에서 말하는 \'재\'의 의미는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거나 스님들이나 일반인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님이 말한 망자는 사막지방의 신을 말하나요? |
초기불교와 소승불교는 절대계와 현상계로 구분하구요 윤회로 인해 삼계(욕계,색계,무색계) 돌고 도는 세상이 현상계고 열반을 통해 현상계(삼계)를 벗어나 절대계로 들어가는겁니다.. 윤회로 돌고도는 삼계가 현상계입니다 그래서 삼계에서 벗어나라고 하는겁니다. 대승불교는 이와 반대로 현상계와 절대계를 구분하지 않고 하나로 봅니다. 진속불이 .. 그래서 삼계(현상계)에서 벗어난다는 생각을 부정하는 보살이 중요개념으로 나오는겁니다. |
오호...그렇군요. 개인적으론 반대라 생각했는데....아니었군요...ㅎㅎ 소승과 대승이 이처럼 세계관(?)에 차이가 있다면, 유대교와 기독교와 같이 다른 종교로 봐야 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드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청량스님// 대승불교는 삼계를 벗어난다는 생각을 부정하는게 아닙니다. 님의 말은 기독교인들이 천국에 간다는 생각을 부정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아요. |
대승불교는 크게 4가지로 분류하는데요 천태종 화엄종 선종 정토종입니다. 이중 정토종이 아미타부처 극락같은 세계를 설명하는데요.정토종은 정확히 말하면 진속불이라고 하기에는 힘들죠. 정토종이 기독교에 천국(극락)이나 메시아(미륵) 비슷합니다. 결국 대승불교도 모든 경전이나 논서들이 동일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게 아닙니다. 물론 법화경이나 화엄경이 대중성을 위해서 정토종에 색깔을 차용했다는걸 부정하는건 아닙니다. 하지만 대승사상이 나온 큰 이유가 개인의 해탈(삼계를 벗어나 완전한 휴식(열반)에 든다는 생각을 부정하고 영원히 윤회하면서 현상계에서 대중과 함께 한다는 생각에서 나왔기 때문에 크게 대승을 진과 속이 둘이 아니다는 진속불이가 되는 겁니다. 제가 말하는 대승이 개인의 해탈이나 딱음를 부정하는게 아니라 삼계(현상계)에서.벗어나는게 열반이나 해탈 이라고 생각하는 인도 전통사상을 대승불교가 부정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불교는 기독교같이 중간중간마다 가지치기를 한게 아니기 때문에 좋게 말하면 다양성을 인정한거구 나쁘게 말하면 죽도 밥도 아니게 된겁니다. 그래서 소승과 대승을 구분할줄 알아야 하구 대승불교 안에서 조차도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경전에 차이를 알아야 이해가 되는겁니다. |
대승불교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한다고 말한 것부터가 님은 대승불교를 모르는 겁니다. 법화경이나 화엄경이 대중성을 위해서 정토종의 색깔을 차용했다는 근거는요? 그리고 다시한번 말하지만 대승불교는 열반을 부정하는게 아닙니다. 생사윤회를 할지라도 보살도를 행한다는 것이지 영원히 윤회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청량스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기독교인이신가요? |
무여의열반 - 남은 것이 없는 열반으로 부처님이나 아라한이 육신까지 소멸하는 열반에 들었다는 것으로, 반열반이라고도 합니다..초기불교나 소승에 열반입니다. 삼계에서 벗어나는걸 목표로 하는 열반입니다. 무주처열반 - 대승불교의 열반으로, 보살은 자성청정열반을 성취했지만 무여의열반에 들지 않고(無住處) 끝없는 교화행을 펼쳐나갑니다. 대승경전에서 아라한을 왜 비난하는지 감이 안 오시나요. 유마경에서 유마거사가 왜 부처님에 직제자인 10대 제자를 다 불러서 비난합니까. 유마경 첫품이 현실에 국토가 불국토인데 (진속불이) 인데 삼계(현상계)를 벗 어나서 이번생이 마지막이라는 아라한들을 왜 비난하고 있는지 이해를 하셔야..유마경이 이해가 가는거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