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석상에 나설 때마다 축구에 관한 질문이 쏟아진다.
TV 예능프로그램 출연으로 요즘 ‘축구를 좋아하는 아저씨’라고 불린다.
“내가 축구선수였던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어도 한국테니스의 선구자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이번에는 한국테니스 저변 확대를 위해 후진 양성에도 뛰어들었다.
이형택(46) 오리온 테니스단 감독을 창간 17주년을 맞아 만났다.

◆“피가 끓고 있었어요.”

이형택 감독은 한국테니스의 선구자다.
지난 2004·2005년 프랑스오픈과 2004년 US 오픈서 3회전 진출을 이뤄냈다.
2007년에는 US오픈 16강에 진출했다.
한국테니스 선수 최초 메이저대회 16강행이었다.
그가 2007년 8월 기록한 세계 36위는 이후 11년간 한국 선수 역대 최고 순위로 남아 있었다.

현역 은퇴는 2009년이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라면서도 이 감독은 그때 벌어진 일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경기 중 넘어져 무릎 내측인대를 다친 게 화근이었다.
그해 동계훈련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고, 회복이 덜 된 무릎이 계속 발목을 잡았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유의미한 성과를 내고자 출전한 윔블던 대회와 2008 베이징올림픽 대회서도 제 실력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그때를 떠올린 이형택 감독은 “부상 회복이 안 된 채로 계속 게임을 뛰다가 성적이 좋지 않았다.
체력훈련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해 어느 순간 체력도 떨어지는 게 느껴지더라”며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마음 한편에는 피가 끓고 있었다.
선수생활을 더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박수칠 때 떠나자’라는 생각에 미련 없이 생각을 접었다”고 돌아봤다.

◆“처음에는 별일이 다 있었죠.”

산전수전을 다 겪은 이 감독은 아직도 지난 2009년을 잊지 못한다.
이 감독이 현역 은퇴를 선언한 해다.
이 감독이 그때를 떠올린 이유는 난생처음 경험해본 어려움 때문이다.
이 감독은 “별일이 다 있었다”고 웃었다.

해외 연수를 고민하던 중 지도자 꿈을 위해 현역에서 물러났다.
세계무대서 경험한 바를 전수해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겠다는 일념뿐이었다.
당시 강원도지사의 도움으로 아카데미를 차려 첫발을 뗐다.
현실이 녹록지 않았다.
실내테니스 붐이 일어난 최근과 달리 당시에는 사설 교육 자체가 인정받지 못할 때였다.

이 감독은 “지금은 아카데미가 많아져서 괜찮지만 그때는 관련 시설이 거의 없었다.
학교 측에서도 호의적이지 않았다.
어린 선수들을 데리고 훈련하고 있는데 ‘당장 학교로 들어와’라고 해서 훈련을 급하게 끝낸 기억이 가득하다”며 “이제 막 은퇴했던 시기여서 체력훈련이 기본이라고 생각했었다.
체력적인 부분을 정말 강조했었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세계 100위권으로 가야죠.”

TV 예능프로그램과 출연으로 바쁜 나날을 지내는 요즘 이 감독은 다시 심장이 뛴다.
2010년대 초반 이후 감독 타이틀을 달고 오랜만에 선수 조련에 나서기 때문이다.
이 감독은 “전영대 단장으로부터 새로 창단한 오리온 테니스단의 비전을 듣고 다시 심장이 뛰었다”고 말했다.
국내 테니스는 전국체전과 도민체전이 중심이지만 오리온은 어린 유망주들에게 국제 경험을 불어넣는 걸 최우선으로 삼았다.
제2의 이형택, 정현, 권순우를 조기에 육성하겠다는 의도다.

김선용 주니어 국가대표 감독이 오리온 테니스단 코치를 맡았고 이해선과 김장준 등 어린 선수 2명으로 선수단을 꾸렸다.
“나는 지나가면서 한 마디씩만 해주는 역할이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지 않나”라고 했지만 이 감독의 역할은 무궁무진하다.
결국 주니어 선수들의 해외행 역시 이 감독의 경험이 필요하다.

이 감독은 “아직 어린 선수들이 국내 시스템에 얽매여있는 게 보인다.
해외에 나가서 20개 이상 대회를 소화하고 100매치 이상 뛰는 등 투어선수라는 생각을 먼저 심어줘야 할 것 같다”며 “권순우 선수도 성인이 돼서 갑자기 잘한 게 아니라 어려서부터 경험을 차근차근 쌓은 케이스다.
더 많은 선수가, 어린 선수들이 체계적인 교육으로 세계랭킹 100위권 안에 들도록 돕는 게 지도자 이형택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사진=오리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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